일상 134

캄캄할 땐 당신 생각을 해도 되겠다.

아무리 굽은 일도 마음을 정하고 나면 가뿐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비록 굽은 것이 펴지거나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건 두번 다신 경험하지 않을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닌 다시금 그 고독이나 고통속으로 되돌아 간다할지라도 그 시점까지 잠정적인 가뿐함, 혹은 유예기간의 막연한 안도감이라고 할까... 한 편의 시(詩)를 만나고 그 싯구들을 오래 기다린 정답처럼 가슴에 새겼다. 간혹 너무 단 것을 먹으면 혓바닥과 속이 아린 적이 있다. 이 시가 그랬다. 결국 내게 남을 것은 속 아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첫 입은 달았고, 울던 울음을 그칠만큼 달달했다. 지금의 내가 살아온 나를 바라볼 때 이런 단순함과 살아내겠다는 의지가 아닌 밝은 희망을 마주한다. 나는 혼자서도 잘 놀 줄 아는 사..

일상 2023.10.10

손 맛!

계절이 바뀌는 모퉁이에는 고여있는 눈물을 발견한다. 연이어 비가 왔다. 그리고 기온은 툭 떨어지고 가을이 어느새 다가와 있다. 새로운 계절이 오기 전 지독한 계절앓이를 하는 나는 내가 아픈줄 알았다. 하지만 오고가는 계절이 그렇게 아팠나보다. 떠나는 계절은 이별 앞에서, 오는 계절은 날것의 불안으로 몇날의 비로 두려움을 떨쳐버리려 했는지도 모르지.. 일년에 4번,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시간을 합하면 한계절의 이별쯤이야 아무것도 아닐것인데 나는 매번 이 계절이 처음인양 앓이를 한다. . 늘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관성의 법칙은 쇼핑리스트에서도 발견된다. 몇일 전 주문한 샤프가 도착하자마자 손에 쥐어보았다. 그립감이라는 말은 낯설다. 차라리 손맛이라 쓰자. 손끝에서 느껴지는 짜릿함은 펜촉에서부터 지면에 닿아 개..

일상 2023.09.27

Beautiful New York

공간이 갖는 아름다움은 단순히 외형이나 물성이 갖는 아름다움뿐 아니라 공간이 만들어내는 시간속 머무름, 즉 기억이라던가 추억, 사건이 많은 부분을 갖는다. 더불어 공간을 마주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한 것인데 나에게 있어 이곳은 부재와 상실이라는 단어가 먼저 오버랩 되는 곳이다. 두려움과 상처로부터 도망쳐 온 이곳은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열린 환경이다. 시선의 끝을 찾을 길 없는 뚫린 하늘이나 허리가 젖혀질 만큼 높이 쏟은 빌딩들, 여러 언어들의 혼재. 이곳의 나는 카오스 . 하지만 딸아이를 만나러 한낮에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뉴욕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길 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대서양까지 흘러내리는 도심을 가로 지른 허드슨 강. 강을 마주한 두 도시, 그 도시를 잇는 브릿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일상 2023.08.15

올리브 나뭇잎 하나

알려고도 알아서도 안되는 이야기들에 마음을 졸인다. 조금만 비가 와도 물이 차올랐는데 유독 많은 비가 내리는 요즘 괜찮은 것일까? 이사를 했을까... 속절없는 답답함이 밀려들지만 어쩔 수 없다. 이별에 단계가 있듯 상실의 터널을 지나는 것에도 몇 단계가 있음을 이제야 배운다. 처음에 가진 원망도 그 뒤에 밀려온 허전함과 다할 수 없는 그리움도 새삼스럽게 깊어졌던 사랑에도 한 걸음 물러나 설 수 있게 됐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하겠지만, 나의 기대가 헛된 꿈이라는 현실인식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닌듯 하다. 이 진리를 깨닫기까지 아파한 시간이상으로 더 많은 시간을 견뎌나가야겠지만 나의 어떠함과는 상관없이 시간을 흘러가니 이또한 얼마나 ..

일상 2023.07.22

삶은 언제나 죽음보다 무겁고...

삶은 언제나 죽음보다 무겁게 다가온다. 수월하게 살아지는 인생이 몇이나 되겠나만은 겹겹이 쌓인 설움과 절망을 마주할 때면 고개는 절로 숙여지고 어깨는 힘없이 오그라든다. 차라리 죽는게 편할 것만 같다 여기면서도 살아내는 것이 인생인 것일까? 무슨 삶의 미련이 이다지 많아 모진 삶을 버퉁기며 살아가는 것일까.늘 가까이 다가운 죽음이 낯설지 않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몸에 붙은 습기는 자꾸만 무게를 더해간다. . 어릴적 지금의 내 나이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단 한 번도 장수(長壽)를 기원했던 적이 없다. 내 나이보다 한참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엄마, 나는 지금의 내 나이 혹은 그 이상의 나이에 익숙하지 않다. 그렇게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나이를 살아가고 있고, 그런 까닭에 자주 길을 잃..

일상 2023.06.29

공간의 쓸모 - Chelsea Market

건물 역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도시의 변화에 따라 생명이 덧입혀지는 것이 있는 반면 한 도시가 쇠퇴하게 되면 그곳에 자리한 건물까지 생명력을 잃어가게 된다. 어떤 글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무슨 책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리베카 솔닛의 책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다. 도시변동화에 따라 미국의 주요 도시에는 백인중심의 도심이 어느덧 외지인유입에 의해 변화를 갖게 되었다. 오래된 건물들은 조각들과 건물자체의 높은 예술성을 가졌지만 단기간 살다 이동하는 외지인들에 의해 관리가 되지 않아 그 생명과 가치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글이었던 것 같다. . 비오는 금요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책 한 권을 챙겨 지하철을 탔다. 날씨 탓일까? 도서관을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렇게 동한..

일상 2023.06.24

기억이 박제되는 곳.

1941년 문을 연 브룩클린 공립도서관이다. 7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해 한시간 십여분만에 도착한 곳. 지하철에서 멀지않아 헤매지 않았다. 마침 오픈 시간도 9시라 기다림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단지 건물모양이 책모양으로 지어졌다는 말을 듣고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역시 오길 잘했다. 이 도서관은 미국에서 5번째로 큰 도서관인데 무엇보다 멀티미디어 관련 자료가 많은 곳이다. 또한 에스프레소 북 머신을 이용해 서적의 주문형 도서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도서관은 책을 보관 보수하는 곳으로만 알던 나로서는 책을 제작한다는 말은 생소하고도 경이롭게 느껴졌다. 한국 도서관에도 이런 서비스가 제공되는 지는 알아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도서관의 이런 기능은 희소본이나 절판도서에 대한 접급성을 높여줄 듯하다. htt..

일상 2023.06.03

더욱 짙어진.

쉬고싶은 몸을 일으켜 도서관을 찾았다. 그 누군가는 내가 살아있는 것이 요행이다라고 말할만큼 몸을 돌보지 못한 시간이 길었다. 자신에게 냉혹하다는 것과 애쓰며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몸이 보내는 사인으로 절감한다. 영양제와 마그네슘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체중이 줄었음에도 몸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마음의 짓누름이 큰 까닭일까? 부채처럼 짊어진 삶의 흔적때문인지 알 길 없지만 하루를 형벌처럼 어깨에 두르고 걸음을 뗀다. 도서관 열기를 기다려 아침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공원에 앉아 커피한잔을 마신다. 일주일에 한권 수혈받듯 책을 읽기위해 펼친다. 오늘의 책은 스벤 슈틸리히의 "존재의 박물관"이다. . 기대감으로 책을 사고 막상 읽어내지 못하는 책이 있다. 나는 글에 생명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 까닭에 책을 선..

일상 2023.05.27

까닭.

모질어 지기 싫어서, 원망하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틀어지거나 무너지거나 더이상 일으켜 세울 것도 없이 깨져 버린 인생을 조각보 깁듯 기워가는 것이 더 비참할듯하여 깨진 홈을 메우고 갈라진 금을 지워버리는 것을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고이기도 전에 터져나오는 많은 말들 때문에 오히려 글을 쓸 수 없는 시간을 지났다. 글이 가진 그 위력을 알기 때문에 서슬 퍼런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저 주억거리며 삼키는 삶.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이 오히려 살겠더라. 아직도 남은 마음의 그 무엇이 미련일지라도 미움보다 사랑이 낫지 않은가. . 스튜디오형 집 창문에 작은 에어컨이 달려 있는데 비가 올 때마다 타닥타닥 거리는 빗소리가 마치 처마에 빗방울 떨어지는 듯 해 마음은 더욱 ..

일상 2023.05.08

연초록빛 너머를 볼 수 있을까.

그냥 그렇게 스쳐 지나가지 않았다. 분명 자신의 시간에 자신의 족적을 뚜렷이 남긴다. 그것이 봄이다. 봄이 사라진다면 여름은 오지 않을 것이고 가을이 겨울 또한 오지 않겠지. 그래서 연초록빛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생명의 경이를 깨닫고 성장 소멸의 과정을 봄을 통해 바라본다. 잔인한 4월이, 아픔의 흔적만 가득했던 시간이 지난다. 그렇게 천년같은 한해가 지났다. 비가 잦다고 불만가득했던 입술이 옹색해지듯 하루가 다르게 물기를 머금은 잎사귀는 풍성해지고 닿지 않았던 마른 손들이 도로를 지나 어깨를 두른다. 분명 오지 않을 듯한 봄이 온 것이다. 지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어느새 한해가 지난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 때 그 자리에 서 있는데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변한다. 한기 든 마음을 누..

일상 2023.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