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손에 쉽게 닿는 건 아름다움이 아니지.2024.09.24.

huuka 2024. 9. 25. 09:55

경쟁사회가 아닌 곳이 어디있겠냐만은 한국사회만큼 경쟁을 부추기는 나라는 없을듯하다. 공중파방송에서 제작되는 많은 것들이 경쟁을 통한 탑을 쟁취하는 과정을 만들어낸다. 가요에서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들은 국악, 악기연주자, 목소리, 춤에까지 장르불문이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한참을 심취해 빠져들기도 했지만 그 다음은 그러니까 일등을 한 사람에게 크게 관심이 유지되지는 않았다. 극도의 긴장감을 갖고 한 단계 한 단계 임하는 그들의 성취에 함께 기뻐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컸던 것인지 아니면 경쟁구도자체를 즐기게 된 것인지는 알길 없다. 이번주부터 시작된 스테이지파이터, 스테파는 이례적으로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 세파트로 나누어 퍼스트를 구별해내는 구조인듯한데 너튜브에 소개된 영상이 흥미진진하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다양한데  음악이나 그림과 달리 춤은 사람의 몸이 도구가 되어 美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이 아닌 몸으로 그것을 표현해낼 뿐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느끼게까지 하니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서양의 춤을 대표하는 발레와 전통적인 한국무용, 거기에 모든 움직임의 총합인 현대무용에 이르기까지 3부분을 아울러 펼쳐지는 서바이벌인만큼 얼마나 관심이 집중될까. 

짧게 끊어 올려지는 영상들을 일일이 찾아보기도 그렇고 그 다음이 궁금해지는 것은 급한 성격탓도 있겠지만 풀 영상이 보고싶어 딸에게 말했더니 대신 티빙에 가입해 아이디를 준다. 하지만 왠걸 지원국가가 아니라고 하니 돈을 주고도 볼 수가 없구나. 물론 이런저런 우회하는 방법으로 볼려면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먼 길을 가기에는 내 나이의 무게가 한없이 무겁다. 쭉쭉 뻗은 팔과 공중에서 교차되는 다리, 순정만화에서나 나올 뻔한 왕자님들의 모습은 내게서 멀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멀리 있고 손에 쉽게 닿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딸에게 알흠다운 남자들을 좀 보려고 했는데 허락되지 않는다 했더니 깔깔거리며 웃는다. 퇴행성 관절염과 고관절 통증으로 걷는것조차 조금씩 힘들어지는 나이지만 누구나 한번씩 꾸었던 발레리나의 꿈이 내게도 있었다. 중학교시절 물론 그 시절에는 여중 남중으로 구별되어 있었고, 여중에서는 체육과 무용수업이 반반 나누어져 있었다. 그때 무용선생님이 조선대학교 발레전공자로 꽤나 유명하셨던 분이셔서 수업중에 발레의 기본동작을 배울 수 있었고, 기말고사 시험으로 창작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직 그때의 일이 나는 선명하니 기억난다. 꽤나 조숙했던 나는 파우스트를 읽고 있었고, 그것을 극화해서 발표했다. 단연 칭찬을 들었고, 몸사위보다 스토리가 있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을까? 내 몸이 그려내는 스토리 내가 살아내는 삶이 스토리가 된다는 것, 그래서 나는 글쓰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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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은 후 스테파로 시간을 떼웠다. 언제나 그랫듯 해결할 수 없는 고민앞에서 머뭇거리는 마음은 잠잠히 책을 읽을 수 없게 한다. 비록 경쟁프로그램일지라도 그들이 흘리는 땀이나 뭔가 애씀으로 해낼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찾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막둥이가 지난 달부터 이가 아프다했는데 참기 힘든 정도가 되었나보다. 이곳에서의 다른 병원은 어느정도 커버가 되는데 치과는 큰 돈이 든다. 어쩌면 좋을까. 마음이 착찹해져온다. 애쓰고 노력해도 조금 모았다 싶으면 호로록 새어나가버리는... 삶의 문제는 언제나 버겁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내기는 더없이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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