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Jesus - 매일 묵상. 10

응답은 또 다른 시작 / 2021.01.14. / 창세기 25-27장.

응답 없는 기도는 없다. 또한 기도의 응답은 기도의 완성이 아니다. 많은 기도자들이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를 하고 그것에 대한 응답을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 응답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기도의 응답은 기도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알린다. 대부분 그 응답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발전되고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주시는 것은 선한 것이다.(마 7:11) 그럼에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기쁨을 누리다 그 끝은 더 큰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한 이삭이 60세에 자녀를 보았으니 결혼 후 20여 년간 그들은 자식이 없었다. 어머니 사라의 불임기간에 비하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20년간 자..

소외된 자에게 임하는 은혜 / 2021.01.12. / 창세기 21-24장

그녀는 종으로 태어났다. 출생이 천하다하여 불평하지 않았다. 그저 태어났고 다른 이들에 비해 넉넉하고 좋은 주인을 만나 다행이다 생각했다. 주인은 그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분으로 명을 받아. 모든 것을 버리고 '약속의 땅'이라 일컫는 곳으로 떠난 길이었다. 그녀는 유년시절의 추억이 있는 이곳을 떠나 떠도는 삶보다 종으로 살지라도 안정적인 이곳의 삶이 좋았다. 하지만 떠나야한다. 주인이 떠난다 하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들은 헤브론에 도착했다. 그녀의 주인은 늙었고, 자식이 없었다. 자식이 없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믿었다. 안주인은 그녀를 불렀다. 안주인은 나이가 들었지만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녀는 젊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안주인은 그녀에게 주인의 자녀를 얻도록 명..

나를 구원하소서. / 2021.01.08. / 창세기 18-20장

나를 구원하소서. 2021. 01.08. 창세기 18장 - 20장 “그럼 제가 어떡하면 되나요?” 청소년 사역을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그릇된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알았다.” 말한다. 하지만 알았다고 말한 아이들이 그다음 날 똑같은 문제로 마주한다. 안 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고, 거듭 마음을 먹어도 또 그런 상황에 있는 자기를 보게 된다고. 어디 아이들뿐이랴. 나 또한 벗어나지 못하는 상습적인 죄의 굴레 속에 있다. 굳이 그것이 죄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죄를 부추기고 조장하는 환경이 있다. 그 환경이 주는 매력과 중독성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곳에 머무르게 만든다. 그런 환경에 종속되어버린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

침묵 끝에 만나는 지존자. / 2021. 01.07. / 창세기 15장-17장

침묵은 침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침묵은 역설적이게도 아우성을 동반한다. 이 아우성은 모든 이들에게 들려지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에게로 향한다. 자신에게만 들리는 내면의 아우성이 잠잠해질 때 우리는 지존자를 만나게 된다. .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은 모호하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어느 때에 그것을 이루어주신다는 말인가? 더욱이 사래는 불임이다. 모호함 속에 아브람은 길을 떠났고 헤브론에 이르렀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묻는다.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않으십니다. 내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그러니 나의 상속자는 엘리에셀입니다.” (창 15:2) 이 말에 하나님께서는 단호히 말씀하신다. “엘리에셀은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될 것이다. “(창 15:4) 이 ..

Visionary. / 2021. 01.06. / 창세기 12장 - 14장

결단이 우리는 이끌고 가는 것일까? 일상이 결단을 이끌고 가는 것일까? 수련회나 부흥회를 마치면 청소년뿐 아니라 장년들에게서 동일하게 일어나는 일이 있다. 바로 “결단”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결단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용(無用)한 것인지. 3일? 일주일? 한 달... 기도원에서 내려오는 순간. 교회 문을 나가는 순간 우리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폭풍우 속에 들어간다. 그 폭풍우 속에서 바라본 “결단”은 지금 이 당장 이 폭풍우 속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붙들 수 있는 지푸라기조차 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단 살고 보아야 할 일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명하신다. “ 네가 살아온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네게 복을 ..

지금은 허물어지고 부서질 때. / 2021. 01. 05. / 창세기 10장-11장.

어렸을 때 선산에 가 벌초를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예초기를 들고 계셨고 저희에게는 손에 작은 삽을 쥐여주시며 잡초부위의 흙을 한번 쿡 찔러 부드럽게 한 다음 뽑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일은 여간 고단하고 귀찮은 일이 아니었고 풀 따위가 무슨 힘이 그리도 센지 대가 똑똑 끊어지기만 할 뿐 통으로 뽑히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잡초는 뿌리가 땅으로 깊이 이어져 서로 연결되어 있다. 뿌리까지 모조리 뽑지 않으면 다시금 잡초로 가득하게 된다.”시며 제대로 뽑아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 우리 마음에 박힌 '악' 또한 눈에 보이는 것,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악의 뿌리는 깊기도 하지만 연합하기 좋아하는 죄의 속성들은 뭉친 힘으로 대적합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악의 연대를 봅니다. 악의 연대는 단 한 ..

"그러나" 에 입히신 은혜. / 2021.01.04. / 창세기 6장-9장

자녀를 키우면서 깨닫게 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지혜와 지식이 부족하여 어리석음으로 짓는 죄가 많지만, 자라면서 본성적으로 죄를 즐기고 그 욕구가 끊임없이 끓는 물과 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실수와 범죄의 현장에서 부모의 말에 청종하여 그 길에서 돌이키는 자녀는 그 인생이 복되고 부모의 마음을 흡족하게 합니다. . 경건한 하나님의 후손들이 불경건한 세상의 후손들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창 6:2) 그들의 행함은 부패했고 포악합니다. (창 7:11),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합니다. (창 8:21), 그러나 노아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입니다. (창 6:9). 하나님께서는 근심하셨고. (창 6:6)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도록 명하십니다. 노아를 통한 방주의 제작은 부패하고 포악한 인류가 하나님..

참 자유 / 2021. 01.02. / 창세기 3장-5장

진정한 자유. 누구나 자유를 갈망합니다. 하지만 그 자유를 누리려면 최소한의 질서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 질서는 사회구성원 간의 약속이나 규칙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질서가 무너진 곳에는 약탈과 범죄가 있을 뿐입니다. 약속과 질서에 순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고 자신의 소속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표식입니다. .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창 2:16-17) 명하셨습니다. 그들은 에덴동산 다른 그 어떤 피조물보다 으뜸이었고, 자유로운 존재였습니다. 모든 것이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로운 선택이었고, 그들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것들은 풍성..

다 내게로 오라. 2021.01.01

" #다_내게로_오라." 쉼을 잃어버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은 당신에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무거운 짐을 진 자들에게 쉼은 간절함이지만 그들에게 쉼의 공간은 허락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우리 주님은 너희 무거운 짐을 진 자들도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지만 이 은혜는 드러난 것이 아닌 감춘 진리입니다. 스스로 높은 체하며 에헴 하는 자들에게는 그 은혜를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 우리는 어깨가 무너지도록 짐을 지고도 내려놓을 줄을 모릅니다. 이미 내 키를 넘어서고 내 어깨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넘어섰음에도 부득불 “조금 더”를 외칩니다. 왜냐면 세상은 그런 곳이니까요. 자신의 분량을 넘어선 곳에 성공이 있다고 속삭입니다. 그 짐을 내가 내..

2021.01.01. 인생의 참 전성기 / 창세기 1-2장.

우리는 살아오면서 전성기라는 것을 경험합니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육신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며 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을 때를 육체의 전성기라 말합니다.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지고 건강을 돕는 많은 것들이 있음에도 육체의 전성기는 그 나이의 반값 정도로 결코 길다 말할 수 없습니다. 반면 정신적 전성기는 육체의 전성기보다 20~30년은 더 길다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정신은 육체라는 그릇에 담긴 보배로운 것으로 정신만으로 한 사람의 전성기를 가늠하기는 어렵습니다. .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전성기는 자신이 연구하고 추구해온 모든 것에서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는 시기로 높은 자기 만족도와 사회적 성취, 그리고 인정이 동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