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Jesus - 매일 묵상.

Visionary. / 2021. 01.06. / 창세기 12장 - 14장

huuka 2021. 1. 6. 22:09

 

결단이 우리는 이끌고 가는 것일까? 일상이 결단을 이끌고 가는 것일까?

 

수련회나 부흥회를 마치면 청소년뿐 아니라 장년들에게서 동일하게 일어나는 일이 있다. 바로 “결단”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결단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용(無用)한 것인지. 3일? 일주일? 한 달... 기도원에서 내려오는 순간. 교회 문을 나가는 순간 우리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폭풍우 속에 들어간다. 그 폭풍우 속에서 바라본 “결단”은 지금 이 당장 이 폭풍우 속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붙들 수 있는 지푸라기조차 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단 살고 보아야 할 일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명하신다. “ 네가 살아온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네게 복을 주리라.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1-2) 이 말씀을 들은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창12:4) 길을 떠난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땅을 아브람에게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지 않는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람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떠났다(히11:8)고 말한다. 자신이 지금껏 일구어 온 땅과 하나님이 제시한 땅과 가치비교 즉 계산조차 불가하다.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미루어 짐작할 때, 아브람은 이미 사래의 불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큰 민족을 이루리라 하신 말씀을 신뢰했다. 이런 무모한 결단이 어디 있을까?

 

결단 하나로 온 가족이 길을 떠난다. 하지만 그 길은 녹록한 길이 아니다. 하란에서 가나안까지 800km의 길이다. 만만찮은 것은 거리뿐 아니다. 고르지 않은 날씨도 그렇다 그들은 기근을 만난다. 애굽으로 내려간다. 삶의 자리를 버리고 떠난 결단. 가히 믿음의 조상이라 일컬어질 대단한 결단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 약속을 의지한 결단이었다. 하지만 기근이라는 폭풍우 속에 다시금 바라본 그 약속은 당장 자신의 목숨을 보전해 줄 것이 못 된다. 아브람은 사래에게 아내가 아닌 누이라 말하라 한다.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아내를 위험의 자리, 바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 무모한 행동은 아브람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전적으로 흔드는 행동이다.

 

결단이 우리의 믿음을 보증하지 않는다. 결단이 우리를 이끌고 가는 것 아니다. 일상이 그 결단을 이끌고 가는 것 또한 아니다. 비전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이 우리를 이끈다. 결단의 주체가 되는 내가 아니라, 결단으로 이끄는 비전.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이 주체다. 비전을 잃어버리면 결단은 무너진다. 비전을 망각하면 결단은 무용지물이 된다.

결국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하나님께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시고 ( 창 12:17 ) 언약의 길을 다시금 걸어가게 하신다.

 

결단은 중요하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나아가야 할 바를 지정하기 때문이다. 내 의지와 내 결단으로 삶을 이끌고 나가는 것, 삶의 유용한 부분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어려움을 만날 때 결단이 나의 삶을 지켜주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비전의 사람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를 보라. 그들은 하나님의 비전을 품은 사람들이었고, 그 비전은 풀무불도 그들을 사르지 못했다. 새해 새롭게 결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먼저 점검하라. 삶의 우선순위와 주체를 내가 아닌 하나님이 되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