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7

기러기.

T의 일을 알게 된 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닫아두었던 SNS를 열어 그간의 일들을 시간순으로 재배열해본다. 다시금 찬찬히 살펴보아도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의 게토(ghetto)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굳이 나중심의 세상은 아니었다할지라도 그들과 함께 어깨를 견주고 나란히 할 수 있었던 시공(時空)에서 나만 지워진거다. 아니 철저히 나만 거세당한듯한 느낌이 든다.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과 T와 짝을 맞춘 H만큼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울컥 눈물이 쏟아졌지만 어쩔수 없다. 자신이 속할 수 없는 리그를 바라보는 것은 잔혹하다. 어쩜 나도 그러했을지도 모르는 시간에 생각이 미치자 두려운 마음이 든다. 얼마나 많은 잣대와 공의로 재단하고,교만한 검열로 틈을 찾는 이들에게 아픔과 슬..

일상 2022.11.05

하늘보다 더 푸른.

고국의 가을보다 이쁜 곳이 또 있을까보냐만은... 뉴욕의 가을도 예쁘구나. 어쩜 짧아서 더 안타깝고, 더 소중한지도 모르지.... . 고국의 가을은 온 산이 불타듯 시뻘건 단풍이 주를 이룬다면 뉴욕은 온통 노랑.연두빛으로 다시온 '봄'과도 같다. 나는 오늘 그렇게 유명하다는 뉴욕의 중심 센트럴파크에 서있다. 유독 바람이 심하게 불었고,내일은 오늘보다 더 기온이 떨어진다고하니, 10월임에도 내복을 입어야겠다는 생각에 "여기에도 내복을 팔까?"..... 추위에 약한 나로선 이쁜 경치보다 다가올 겨울이 염려스럽고, 살아갈 일들에 생각이 기우는건 어쩔수없는 가난한 이의 삶인듯하다. . 거리를 거닐며 떨어진 낙엽들을 보아도, 찬바람이 불어도 고국의 가을보다 처연한 느낌은 없다. 색감이 주는 느낌도 있겠지만 민소매..

일상 2022.10.28

게으른 비.

한없이 느리고 게으른, 거기에 변덕스럽기까지한 비가 하루종일 내린다. 몇날을 이어 아픈 나는 핫팩을 허리에 붙이고 하루를 보낸다. 지루한 비.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건만 마치 장맛비내리듯 그칠 줄을 모른다. 어디에서 속을 다쳤을까? 불편한 속에 곡기마저 떼우지 못하고. 쿠르릉 거리는 배가 변덕스런 하늘을 닮아있어 차라리 빈속이 편할 듯하다. . 나는 여전히 그자리에 서 있다. 마치 심장이 소진되어 사라질 소실점을 기다리듯 안으로만 응시한 체. 이미 소원해진 것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시간은 경주마처럼 달려가고 차창밖으로 사라지는 풍경처럼 그날은 까마득히 뒷걸음질이다. 작은 화분을 들여 초록잎을 보는 것과 가져 온 몇 권의 책을 곱씹듯 천천히 읽는 것이 마치 내 몸에 보약을 들이키듯 원기를 얻..

일상 2022.10.14

비가 왔고 아팠다.

이틀 연속 비가 온다. 새벽녘 집중적으로 쏟아진 비를 Highway는 감당을 못해 물웅덩이를 만들어놓았다. 그럼에도 새벽기도에 열심인 성도들은 한분도 빠짐없이 교회에 오셨다. 몸이 아픈 나는 오늘만큼은 쉬고 싶었지만 그저먹는 인생이 어디있단말인가?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다. 빗방울이 맺힌 작은 꽃에서 생명력을 찾는다. 살고싶다. 남의 이목이 그다지도 무서웠던가? 이만큼 몸을 움직이고 한계를 넘는 시간을 보낸다면 고국에서든 못살아낼까? 일의 강도가 세다. 몸 이곳저곳이 아프다. 목은 연일부어있고 잇몸까지 아프다. 더이상 비타민도 듣지 않는 몸. 쉬고싶다. 땅을 기어 따로 또 같이 기어코 나무에 오르는 담쟁이들을 보면서 맞잡을 손 하나만 있어도 좋겠다싶다. 앞으로 2년은 꼼짝없이..

일상 2022.09.14

쉿! 가을이 오고 있어.

고양이 발걸음으로 오던 가을이 소리는 감출 수 있었지만 바꿔입은 옷만큼은 감출 수 없었나보다. 한차례 비로 이렇게 세상이 바뀔 수 있는 것일까? 순간이라고 느끼는 것은 우리들일뿐 자기만의 속도로 그들의 성실이 마침내 드러났다. 이 세상만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을까? 변화는 그렇게 갑작스레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관성의 법칙과 끊어내기 힘든 죄성은 우리의 변화를 더디게 하고 주저앉게 만든다. 자연이 가진 창조주앞의 순종이 경이로운 것은 여기에 있다. 매일의 해가 떠오르고 그날의 바람이 불고 때를 맞춘 비가 계절을 이루어간다. 서두르지도 조급해하지도 않는 나뭇잎을 보라. 순전한 자기만의 때를 기다려 색을 바꿔간다. 한 나무 한 뿌리에서 나고 한 가지에서 자라도 잎들은 자기들의 시간을 ..

일상 2022.09.08

가을은 고독해도 좋다. / 한옥 호텔 - 영산재

전남 영암군 삼호읍 나불외도로 126-17에 위치한 한옥호텔. 일반실과 독채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구분되어 있다. 일반실은 10만원 남짓, 독채는 그것보다 비싸다. 아고라. 익스피디아에서 특가구매도 가능하다. 외지인들이야 한옥호텔에 머무르기 위해 가겠지만 현지인들은 자연경관이 좋아 찾는 곳이다. 넓은 잔디밭과 허브. 갈대. 거기에 보트장까지 있으니 제대로 자연을 즐길 수 있다. 또 논과 주말농장이 있어 계절의 변화를 더없이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울이 깊어진다. 지인들은 약의 도움을 조금 받는 것도 좋다라고 권하지만 마음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약에 의존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직 괜찮다. 내 의지로 고쳐나갈 수 있다. 삶의 변화를 주면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을 해결하면 되지..

일상 2021.10.19

도갑사 - 아직 가을은 멀다.

도갑사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출산(月出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선이 창건한 사찰. .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인 도갑사를 다녀왔다. 나는 예수쟁이지만 내 몸의 3할은 절밥으로 이루어져 있을 만큼 절이랑 가깝다. 친정에서는 선산에 암자를 지어 비구니들을 모셨다. 엄마의 암투병도 암자에서 이루어졌다. 매해 가을이면 암자에서 점심을 먹었고 산을 돌며 밤과 감을 땃다. 나의 유년시절은 나 혼자만의 주일학교와 가족과 더불어 지낸 절에서의 시간이 병행한다. 몇 해만에 찾아온 10월의 한파로 가을이 일찍 달아나버릴까봐 잰 걸음으로 월출산내 도갑사로 차를 몰았다. 집에서는 30분남짓 고속도로에 올리니 그리 멀지않다. 코로나로 인적이 드물다. 더욱이 아직 단풍이 들지..

일상 2021.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