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쉿! 가을이 오고 있어.

huuka 2022. 9. 8. 06:04

고양이 발걸음으로 오던 가을이 소리는 감출 수 있었지만 바꿔입은 옷만큼은 감출 수 없었나보다. 한차례 비로 이렇게 세상이 바뀔 수 있는 것일까? 순간이라고 느끼는 것은 우리들일뿐 자기만의 속도로 그들의 성실이 마침내 드러났다. 이 세상만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을까? 변화는 그렇게 갑작스레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관성의 법칙과 끊어내기 힘든 죄성은 우리의 변화를 더디게 하고 주저앉게 만든다. 자연이 가진 창조주앞의 순종이 경이로운 것은 여기에 있다. 매일의 해가 떠오르고 그날의 바람이 불고 때를 맞춘 비가 계절을 이루어간다.

서두르지도 조급해하지도 않는 나뭇잎을 보라. 순전한 자기만의 때를 기다려 색을 바꿔간다. 한 나무 한 뿌리에서 나고 한 가지에서 자라도 잎들은 자기들의 시간을 따라 물들어 가고 저문다. 다른 이의 변화를 시기하지도 추앙하지도 않는다. 순전히 자신의 본분을 다해 푸르고 노랗게 물든다. 비를 기다리지 못해 시들어버린 나뭇잎조차도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내보인다. 나는 나무앞에서 그들의 시간을 듣는다. 소요로운 마음으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 바람에 몸을 부대껴오는 나무의 소리. 꿀떡꿀떡 잎맥을 따라 흐르는 생명의 소리. 바로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들만이 낼 수 있는 생명의 소리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 것일까?
온전한 삶으로의 부르심은 나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변하지 않는 부동의 것. 색을 더하고 열매를 맺어가는 그들의 결실이 더없이 값진 이유는 모진 바람과 거친 비에도 견뎌낸 까닭이겠지. 우리의 삶에도 모진 바람이 더하고 거친 비에 둘러 쌓인 시간이 분명 있었고, 나무의 떨림같은 불안으로 지샌 밤이 있었다. 나는 나무를 보고 가을의 포문을 터뜨리는 꽃들은 본다. 그렇다면 나의 가을은 어떤 색깔. 어떤 열매를 길러 낼 것인가. 
쉿. 가을이 오고 있다. 잠잠히 그리고 정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때다. 소리는 감출 수 있었지만 그 모습만은 감출 수 없었던 가을처럼 우리의 모습도 추수때를 알리는 이 시간 곧 드러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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