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날아올라라.

huuka 2022. 9. 3. 04:40

목요일이면 막둥이랑 비치를 찾는다. 넉넉히 아침을 먹고 얼음물과 의자, 파라솔을 챙겨 들고 책 한 권과 더불어 찾는 해변.
망망한 바다를 한없이 쳐다 보다가, 책을 읽다가 모래사장을 걷기도 한다. 어젯밤 오랜만에 불닭을 먹은 막둥이는 배가 아프다며 모래사장에 누워 한 시간 정도를 잣다. 몰아치듯 살아온 것은 나만이 아니라 막둥이의 12년이 그러했다. 자퇴를 결심하기까지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하루하루 밝아지고 나이스 해지는 아들을 볼 때 무모한 선택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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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둘이서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출출할 때 먹으려 가져온 비스킷을 갈매기떼에게 도난당했다. 경고문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세상에 이렇게 지혜로운 갈매기가 어디 있단 말인가? 가방안에서 비스킷만 골라 가져 갔다. 타월이랑 책. 물은 고스란히 두고 비스킷만 꺼내 먹은 거다. 돌아오는 길 우리 파라솔 앞에 일렬로 서 있는 갈매기떼를 보면서 막둥이랑 귀엽다고 웃었건만 가까이 와보고서야 도난 사실을 발견. 뒤파라솔 아저씨의 그런 일 종종 있으니 낙담마라는 친절한 말씀.

이렇게 된 이상 먹거리를 감춰두는 것이 아니라 나누기로 했다. 막둥이에게 힘 없는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힘이 세고 덩치가 큰 녀석들은 날개가 거의 독수리급으로 커서 잘 날지 않는다. 모래사장에서 위협적인 목소리로 다른 작은 녀석들이 옆에 오지 못하게 험악하게 굴고 먹이를 독차지한다. 그런 까닭에 힘없는 녀석들은 공중에서 먹이를 받아먹으니 먹이를 던져서 주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먼저 새들과 아이컨텍. 반월을 그리듯 던져줄 것.

막둥이와 이 날만큼은 깊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게 되는데 오늘은 어릴적 기억나는 순간들을 이야기를 해왔다. 다행히 추억할 아름다운 일들이 막둥이의 기억 속에 있었고, 아쉬운 것은 그 기억들 대부분이 엄마와 함께한 시간들이었다. 이제부터라도 막둥이에게 추억할 많은 일들이 생기면 좋겠다. 또래 친구들과, 사랑하는 이들과 자연 속에서 운동장에서 맘껏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여전히 빈 하기만 하지만 물질이 또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작은 몸이지만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두 날개로 날아오르면서 바다에 뛰어들어 얼굴을 바닷물에 적시는 것에 머뭇거리지 않는 새들을 보면서 외치게 된다. 막둥이 날아올라라. 푸르른 하늘을 맘껏 날아오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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