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파리한 슬픔.

huuka 2022. 8. 24. 23:46

아침이면 새소리에 눈을 뜬다. 시내에서 한참 벗어난 변두리지역이라 그런 것인지 거리마다 나무가 자라서 그런 것인지를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아침마다 새소리를 듣고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삶의 기적이고 적지 않은 기쁨이다. 베이글 하나로 하루를 보내는 날이 많다. 시간이 지나면 딱딱해져서 입천정이 까일때가 더 많지만 꼭꼭 씹어 삼킬 때 베이글 한가득 담긴 봉투를 안겨주신 이의 마음이 전해져서 아픔보다 단맛이 남았다. 몇일 전부터 베이글 반쪽을 나의 작은 친구와 나누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은 큰 모험이다. 주인에게 들키면 안되는 일. 새들의 지저귐은 기분좋지만 주차된 차에 작은 친구의 생리작용이 그대로 드러나 함부러 먹이를 주면 눈총을 받기 쉽다. 마음을 위로하는 친구들의 마음에 답하고 싶었다.나의 급한 마음은 베이글을 잘게 자르지 못했고 모처럼 발견한 빵조각에 작은 친구는 급하게 입에 물었다. 자기 얼굴만한 베이글 조각을 들고 잘게 쪼개려는 작정인가? 작은 머리를 연신 도리도리흔들어 된다. 다행이다. 큰 조각이라는 건 내 생각일 뿐 나의 작은 친구에게 하루의 배고픔을 해결할 정도는 된 것 아닐까?

뉴저지에 갔다. 오빠가 있고 아버지의 묘지가 있는 곳이지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벌써 몇 십년이 흐른 시간 이복형제라는 관계는 타인보다 못하다. 아버지의 장례식 비행기표가 없어 가지 못했다. 아니 그런 형편을 아는 오빠가 아예 연락을 해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모든 장례일정이 마쳐지고 한국에서의 사망신고를 부탁하는 전화 한통이 전부였을 뿐. 하지만 짧은 시간일지라도 난 지금 미국에 있고, 모임 일정에 따라 뉴저지로 갔다. 로드맵으로 오빠의 주소를 검색해본 적이 있었다. 그 거리와는 다소 다른 분위기의 뉴저지. 마음이 아린다. 잘못한 것일까? 조금은 용기를 내어 아버지의 묘지라도 물었어야 했을까? 이렇게 왔다그냥 가버리는 나를 아버지는 서운해하실까. "다 부질없다."는 아버지의 입버릇처럼 또 그렇게 읊조리고 계시는 것일까? 건물에 비친 하늘이 선명하다. 무슨 유리가 저리도 깨끗해 눈부시다냐. 눈이 따가워진다.

돌아오는 길 빗방울이 살짝 뿌려졌다.잔뜩 흐린 하늘. 모든 배들이 정박해있지만 낚시꾼들의 입질은 쉬지 않는다. 사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대로 이끌림을 받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것일까? 자신의 힘대로 걸어왔다 생각했지만 어느순간 이끌림을 받았던 때도 있고, 멀리 돌아돌아 오는 걸음이었던 적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걷는 이 길은 어떤 길일까? 지금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바로 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이 모퉁이 돌아서면 어떤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삶을 기록하는 일은 쉽지 않고 죽음은 한 순간이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생과 사가 나란히 있다는 것.

맑갛게 갠 하늘에 해가 지고 있다. 아무리 눈부시고 아름다운 것이라도 모든 지는 것은 아픔을 동반하는 설움이 있다.이곳의 하늘은 해가 질수록 더욱 푸르러져서 나는 밤마다 파리한 슬픔을 품게 되고 가늘고 여윈 그리움에 밤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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