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기이한 일상.

huuka 2022. 9. 21. 00:24

태평양항로를 따라 시속 200-400km의 제트기류에 몸을 실어 14시간을 날아온 곳이건만 고국과 같은 가을이 오고 코스모스가 핀다. 일정한 모양으로 띄엄띄엄 나지막한 건물에 정원을 가꾼 익숙하지 않은 집모양새가 아니라면 피부에 느껴지는 온도는 동일하다. 익숙한 것들을 보게되면 가슴을 쓸며 안도하게 되고 그 안도는 익숙한 것에서 사라진 그 무엇으로 인해 슬픔과 그리움을 만든다. 낯선 곳에서 하루하루가 이렇게 빨리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은 기이한 일인지도 모른다. 5시간 정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몸을 움직여야하는 생활은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다. 틈틈이 20-30분 쉬는 짬에 앉아있기보다 산책을 나서는 것이 오히려 마음은 편하다.

이곳은 벼락을 맞아 부러진 나무를 그루터기만 남겨두고 베어버린다. 겉은 멀쩡하나 속은 썩어버린 고목들도 마찬가지다. 그 그루터기에는 이끼가 앉고 작은 풀들이 자라나 죽은 것 같은 몸뚱어리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루터기를 영양분삼아 자라나는 것들이 얼마나 자라날까보냐만은 남은 모양으로도 풀들을 살려내는 그루터기보다 살아내려는 초록의 삶의 의지가 기특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또한 어떻게든 살아내고 싶은 까닭인지도.... 
지난 주 목사님의 설교중 다자이오사무의 "인간실격"이 예화로 나왔다. 제목만으로도 제대로 저격당함을 느끼게 되는데 아마도 "실격"이라는 말에서 이미 틀려버렸다. 이미 끝이다. 넌 완전히 사라졌다. 자격 미달. 살아갈 자격이 없는 의미로 다가와 그런가보다. 나역시 그의 글을 읽었지만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휩쓸려 자신의 삶을 살아내지 못한 주인공 요조의 말은 한국에서 방영된 전도연이 열연한 드라마 '인간실격'과 겹쳐지고 그녀가 아버지에게 건넨 "아버지 난 아무것도 되지 못했어요."라는 대사와 겹쳐져 Jeff Buckley 의 "Hallelujah"를 웅얼거리게 된다.

누구나 능숙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지는 못한다. 거듭 실패하는 이도 있고, 한없이 절망하는 이도 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나 능숙하게 살아내지 못하는 이가 있다. 그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24시간이라는 시간이 결코 공평하지 않은 것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기보다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선택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운명때문이라 생각한다. 거대한 운명의 회오리에 떠밀려 이곳에 왔다. 또 어떤 운명에 휩쓸려 떠내려갈지 알 수 없지만 "실격"이라는 말만큼은 듣고 싶지 않은 처절한 몸부림속에 나자신을 밀어넣는다. 아직은 견뎌야할 때고 아직은 "끝"이면 안된다.

지난주 월요일에 심었던 국화는 이렇듯 봉우리였는데 어제 온 비로 활짝활짝 피었다. 비에 젖어도 자라나기를 생명이어가기를 멈추지 않고 더 아름다워진 국화. 바람이 불어도 꺽이지 않고 몸을 흔들며 피어낸 코스모스. 그래 국화와 코스모스의 계절이다. 언젠가 다시 한 번 더 나의 계절이 주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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