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게으른 비.

huuka 2022. 10. 14. 07:29

한없이 느리고 게으른, 거기에 변덕스럽기까지한 비가 하루종일 내린다. 몇날을 이어 아픈 나는 핫팩을 허리에 붙이고 하루를 보낸다. 지루한 비.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건만 마치 장맛비내리듯 그칠 줄을 모른다. 어디에서 속을 다쳤을까? 불편한 속에 곡기마저 떼우지 못하고. 쿠르릉 거리는 배가 변덕스런 하늘을 닮아있어 차라리 빈속이 편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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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그자리에 서 있다. 마치 심장이 소진되어 사라질 소실점을 기다리듯 안으로만 응시한 체. 이미 소원해진 것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시간은 경주마처럼 달려가고 차창밖으로 사라지는 풍경처럼 그날은 까마득히 뒷걸음질이다. 작은 화분을 들여 초록잎을 보는 것과 가져 온 몇 권의 책을 곱씹듯 천천히 읽는 것이 마치 내 몸에 보약을 들이키듯 원기를 얻게되는 시간이다. 삶의 의지를 초록과 읽기로 바꿀수 있다니 이 어처구니 없는 내 삶이 웃으우면서도 가여웁다. 그리움은 언제나 먼 곳에 있어 그리움이듯, 가까이 있어도 잡히지 않는 마음이 어찌 이 먼 곳에 잡히기를 꿈꿀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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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삶으로 옹골찬 마음을 만나기는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고된 삶은 사람을 강팍하게 하고 핍절함은 사람을 교활하게 만든다. 만나는 선의가 더이상 선의가 아닌 오히려 그 선의가 두려움이 되는 것은 이곳이 타국인 까닭만은 아닐것이다. 유독 사람이 어려운 내가 별반 바뀔 것도 아니지만 떠나온 곳보다 더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이 내게는 버겁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고 무기력이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울 때면 그곳이 그립고 그 시간은 간절해진다. 작년 그곳의 가을은 온통 노랑이었고. 최고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와 뼈만 앙상하게 남긴 배롱나무가 전부였다.

그것이면 충분한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안에 머물고자 다짐했던 내가 있었다. 쉬이 허물어질 다짐이었다면 주먹을 쥐지 말았어야했는데 말이지. 난 또 허물어질 주먹을 쥐고 이 하루를 지난다. 그렇게 게으르게 내리던 비가 마침내 폭우가 되어 어둠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때, 위로받지 못한 아픈 내 육체는 그 빗속을 노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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