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캄캄할 땐 당신 생각을 해도 되겠다.

huuka 2023. 10. 10. 03:05

아무리 굽은 일도 마음을 정하고 나면 가뿐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비록 굽은 것이 펴지거나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건 두번 다신 경험하지 않을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닌 다시금 그 고독이나 고통속으로 되돌아 간다할지라도 그 시점까지 잠정적인 가뿐함, 혹은 유예기간의 막연한 안도감이라고 할까...
한 편의 시(詩)를 만나고 그 싯구들을 오래 기다린 정답처럼 가슴에 새겼다. 간혹 너무 단 것을 먹으면 혓바닥과 속이 아린 적이 있다. 이 시가 그랬다. 결국 내게 남을 것은 속 아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첫 입은 달았고, 울던 울음을 그칠만큼 달달했다. 지금의 내가 살아온 나를 바라볼 때 이런 단순함과 살아내겠다는 의지가 아닌 밝은 희망을 마주한다. 나는 혼자서도 잘 놀 줄 아는 사람이고 가슴에 그리움을 안고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난 결코 약하지 않고 강한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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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없어도 계속 사랑할 수 있어요 - 고명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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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을 때마다 이 글을 썼습니다.
마음을 다해 당신 앞에 놓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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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만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마음에만 존재하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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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없어도 계속 
사랑할 수 있어요.
이것은 참 흔하고 놀라운 끈기입니다.
그걸 꽃처럼 쥐고 살아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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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운명처럼 생각하는데 꼭 만나야 될 글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는 것 같다. 고명재의 시를 만나고 기회가 된다면 시인의 책을 구입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의 생활은 마음 먹는다고 선뜻 할 수 없는 일이라 사실 시인의 이름을 잊어버렸다. 그렇게 3달 가까이 지난 몇 일 전 비가 억수같이 내렸고, 우산은 겨우 머리 하나만 가리워줄 뿐 사선으로 내리는 비를 온 몸으로 맞으며 서점 문을 열었다. 애매한 위치에 자리한 한국서점은 맑은 날에도 작정하지 않으면 가게 되지 않는데 그렇게 비오는 날 나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8블럭을 걸어서 서점에 갔다. 한 줄의 싯구에 마음이 흔들렸듯 제목에 마음이 움직여서, 띠지에 적힌 한 문장에 꽂혀서 16000원 책을 거의 3만원 돈인 23달러에 구입을 했다. 그렇게 읽어나간 고 명재의 산문. 마음을 움직이는 몇몇 구절들에서 만나는 남다른 삶의 이력이 명문을 만들어 냈지만 감출 수 없는 풋내에 작가 프로필을 살폈다. 역시 젊구나. 젊다는 것은 좋다. 지금의 풋내도 용서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이가 적어낼 글은 그 누구보다도 깊고 사람에 대한 삶의 성찰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상실과 결핍은 영혼을 성숙시키는 가장 큰 자원이니 말이다. 그렇게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그렇게 입술을 달싹이며 읊조렸던 시가 적혀 있다. 그랬구나. 고명재의 시였구나...만나야 될 글은 이렇게 빗겨나지 않고, 슬픔을 아는 이의 글인까닭에 이렇게 습기 가득한 비오는 날 만나게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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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도 이틀 연달아 비가 오고 주일은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말갛게 씻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정되었던 성도님들과 야외예배로 Sunken Meadow Park에 갔다.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잔과 빵을 돌리며 성찬식을 하고 바베큐를 먹었다. 식후 느린 걸음으로 해변을 걷는다. 평균 연령 70세에 가까운 이들과의 교제는 늘 교집합이 없는 겉도는 무엇이지만 오랜만에 마주한 바닷바람은 내 안의 아이를 깨우기에 충분하다.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할 사람없지만 어디 뭐 문제 될 것이 있을까? 타이머를 설정하고 달려가 셀폰을 보는데 성도님들의 웃음소리가 해변을 흔든다. 그분들의 눈에는 이런 내가 마냥 어린아이로 보여지는 듯하다. 내 나이가 몇갠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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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소리 없이 흐른다. 또 한 계절이 지나고 뜨근한 고국의 아랫목이 그리워진다. 한국에 가면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버킷 리스트는 자꾸만 늘어가고 돌아가는 것은 기약없는 그 무엇이 되어가는.... 그럼에도 살아있구나. 살아가는구나..잊은 듯 살아도 그리운 얼굴은 시인의 말처럼 깜깜할 때 생각하기로 하자. 밝음의 시간에는 삶을 잇대어 가야지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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