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Beautiful New York

huuka 2023. 8. 15. 23:48

공간이 갖는 아름다움은 단순히 외형이나 물성이 갖는 아름다움뿐 아니라 공간이 만들어내는 시간속 머무름, 즉 기억이라던가 추억, 사건이 많은 부분을 갖는다. 더불어 공간을 마주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한 것인데 나에게 있어 이곳은 부재와 상실이라는 단어가 먼저 오버랩 되는 곳이다. 두려움과 상처로부터 도망쳐 온 이곳은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열린 환경이다. 시선의 끝을 찾을 길 없는 뚫린 하늘이나 허리가 젖혀질 만큼 높이 쏟은 빌딩들, 여러 언어들의 혼재. 이곳의 나는 카오스 . 하지만 딸아이를 만나러 한낮에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뉴욕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길 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대서양까지 흘러내리는 도심을 가로 지른 허드슨 강. 강을 마주한 두 도시, 그 도시를 잇는 브릿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푸르른 강은 하늘을 그대로 옮겨 놓은 그림판이 되고 구름은 오대양 육대주를 그린 듯 세계를 품었다. 수많은 도로와 그 곳을 메운 차들. 바쁘게 걸음을 옮겨 갈 뉴요커들의 움직임이 선연히 그려지는 것은 도시가 가진 힘이다. "아. 도심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나는 4차원에서 비로소 세상의 중심 뉴욕의 아름다움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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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한낮의 하늘은 용솟음치는 구름 기둥과 그 기둥을 받치는 흩어진 구름융단이 펼쳐졌다. 딸아이를 만나러 간다고 그분이 카펫을 깔아 놓으신 것일까? 일년이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이 맘때즈음이면 다시 그곳으로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일생이라지만 잠시 다녀올 여건조차 되지 않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다시금 납득하게 되는 현실. 모든 좌절과 혼미함 후회와 무너짐속에서 알 길 없는 그분의 일하심은 전혀 예측조차 하지 못한 만남으로 이끌어 뉴욕이 아닌 조지아에서 딸을 만난다.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짧은 여정이라도 같은 하늘아래라 만날 수 있고, 2시간 30분의 비행으로 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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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두려워해 2, 3 플랜까지 세우는 내가 자신의 인생에는 언제나 무모하리만큼 무계획이라는 것. 어쩌면 거듭 실패한 인생이, 아니 무엇 한 가지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인생에 대해 일찌감치 포기를 해버린 까닭일까. 나는 내 인생의 길을 알 길 없고 그저 닥치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무능을 실현중이다. 전능자를 차치하고라도 어려서는 부모의 그늘아래, 자라서는 종교와 사회적 규율아래 성인이 되어서는 자식, 홀로 살아가는 듯하면서도 책임과 의무라는 얼키고 설킨 관계망에서 허우적거리다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것에는 막막함을 느낀다. 딸로서의 나, 누군가의 아내로서의 나. 아이들의 엄마로서의 나역시 나이었겠지만 모든 선택에 독단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언제나 전전긍긍하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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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반절을 넘어버린 인생길에서 새로운 시작과 성과는 아득하기만 하지만 지칠 틈이 없는 나의 인생바퀴는 아직도 돌아가는 중이다. 신이 준 가장 큰 선물인 딸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은 3시간 가까이 비행이 딜레이 되었다. 나의 삶은 언제난 발목잡히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마치 딜레이 된 비행기를 막연히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지금의 형편처럼말이다. 불편한 공항에서 나는 원하지 않지만 일방적으로 퍼부어지는 냉방시스템 안에서, 안내원은 만날 길 없이 바라보아야만 하는 전광판의 무례함에서 무력할 수 밖에 없는 나. 이 모습은 내 인생의 축소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는 어둠을 뚫고 하늘을 날아올랐고 다시금 나는 뉴욕으로 돌아왔다. 남들보다 늦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날아오를 나를 상상한다. 어둠속이라도 양날개의 불빛을 반짝이며 그분의 궤도아래 비행한다면 언젠가는 나의 도시로 나의 집으로 돌아가게 될지 누가 알까.

아직 나는 속절없는 그리움에 때때로 무너지고 가슴을 움켜진다. 하지만 더이상 그림자쫓기는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일년이라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렸구나.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럼에도 새로운 희망이 넘쳐 힘있게 살아가기는 힘든 사람이 되었다.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는 남듯 통증은 희미해졌으나 아직 남겨진 흔적만은 뚜렷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새로운 자신을 꿈꾸거나 다른 것으로 채우는 것이 아닌 존재를 드러내는 흔적하나 간직한 체 살아가는 것도 나다운 것일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요즘. 실패와 상처는 사랑할 수 없지만 그 흔적을 마주할 수 있는 나는 사랑할 수 있을 듯하다. 정말 사랑했으니까. 그 시절의 나와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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