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138

집이 그립다.

돌아갈 집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간절히 집이 그립다. 햇살이 거실 끝까지 들어와 그곳에서 살면 모든 것이 순적할 것만 같았던 곳. 하지만 거실 가득한 햇살도 삶의 어둠은 걷어가지 못했다. 왜 사람은 힘이 들면 집이 그리워지는 것일까? 사실 집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온기가 그리운 것일터지. 곤한 몸을 이끌고 가면 맞아주는 얼굴이 있고, 나와 같은 36.5부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손길. 그것이 그리운 것이야. . 죽을만큼 힘들었다. 늘 그렇다. 죽을만큼 힘들지만 죽지 않았고, 살아있으며 내일이면 또 눈을 뜨고 나는 또 일을 하고 있겠지. 이게 사는거니까. 그리고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꿈이 있으니까. 마당이 있는 감나무가 있는 작은 집.

일상 2022.12.03

Gracia

춥다. 추워도 이렇게 벌써 추워지면 안되는거 아닌가? 풀지 않았던 박스에서 막둥이 롱패딩을 꺼내입고 아이합(ihop)으로 갔다. 5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어둑어둑해진 거리. 버스 정류소에도 사람이 없다. 오늘은 저녁을 야무지게 먹고 싶었다. 아니 내일부터 3일간의 뒷일들을 해 내려면 먹어야한다. 이곳에 오고서 밥양이 늘었다. 몸을 쓰는 일을 하면서 양이 늘었다. 아니 늘렸다고 해야 옳다. 힘이 딸려서 일을 해 내기가 어려웠다. 밥힘이라는 말을 이제야 경험하고, 밥힘으로 일한다는 말도 이제야 인정하게 된다. 내일부터 막강 한파를 이겨내려면 더더욱 든든히 먹어야지. . 평소라면 빵한조각이면 되지만 오늘은 콤보. 계란이 두개에 헤쉬포테이토까지 든든하다. 이곳은 매니저가 스페니쉬인지 직원 대부분이 스페니쉬다...

일상 2022.12.02

이다지도 삶이 무거운데....

6996마일을 날아가야 닿을 수 있는 곳이건만 날씨만은 닮아 있어, 이곳이 그곳인듯, 그곳이 이곳인듯 종종 나는 헤매이게 된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 마지막 남은 잎사귀를 기필코 다 떨어뜨려 놓겠다는 모진 바람에 가지는 이리저리 몸을 흔들고, 바닥을 뒹구는 낙엽은 내린 비에 반사되어 모체로부터 이어받은 자신의 색을 가감없이 토해버린다. 이렇게 한 계절이 또 지나가는구나. . 모든 것이 빛을 잃는다. 여름의 끝자락, 그러니 가을의 초입이라 할까. 브루클린 코니아일랜드비치를 찾았다. 아마도 한 두 전주즈음 총기사고가 있어 막둥이는 가지 않겠다고 했지. 이미 시즌이 끝난 비치였던 까닭에 놀이시설조차 멈추어 있었다. 그렇게 분주했던, 그렇게 들떠있던, 열기는 차갑게 식어 있었고, 시간을 낚는 은발의 낚시꾼들..

일상 2022.12.01

조각보 깁는 밤.

늦가을비가 무겁게 내린다. 도로는 물론 나뭇가지에도 늦가을비는 무겁게 힘을 더한다. 비를 머금은 나뭇잎은 힘있게 물줄기를 올려 가지에 붙어 있으려하나 그 몸은 한없이 무겁다. 계절은 거짓이 없고, 조락은 피할 길이 없다. 그렇게 비는 무게를 더해가며 또다른 계절을 달려 나간다. 이번 가을을 한 줄로 기록하면 바쁘고 아팠다. 육체의 노동이 이렇게 힘들단 말인가? 몸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그 숭고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뷰티그로서리(Beauty Grocery)에서 일한다고 하니 누군가 뷰티가 들어가 나랑 어울린다고 했지. 그러게 말이다. 아름다움을 위한 뒷일은 고달프고 고통스럽다. 어디 아름다움뿐이랴. 우리가 먹고 사는 그 모든 것에 누군가의 노동과 눈물이 있음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것을 모르는 것이 부(..

일상 2022.11.27

행운의 사나이

행운의 사나이라 불리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불리게 된 까닭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행의 그림자를 잘 피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흔한 숫자맞추기는 커녕 어릴적 보물찾기조차 잘 하지 못했다지요. . 행운의 사나이라 불리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힘들었고, 누구보다 눈물 날 일이 많았고 누구보다 고생도 많이 했다지요. 하지만 그는 분명 행운의 사나이라 불리웠습니다. . 행운의 사나이라 불리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행운의 사나이라 불리는 단 하나의 이유. 그것은. 누구도 찾지 못하는 네잎클로버를 잘 찾았습니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네잎클로버. . 어쩌면 그의 삶, 모든 행운은 그가 찾은 네잎클로버였는지 모릅니다. . 하지만 말입니다. 신이 네잎클로버를 만들었다면 그의 이름대로 ..

일상 2022.11.17

끝물이 달다.

달디단 끝물 사과처럼 오늘 가을은 아름답기만 하다. 어제는 하루종일 한여름 같은 태풍이 몰아쳤다. 예상치 못한 비바람에 나무는 온몸을 공포에 떨었다. 온 몸을 흔들어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것을 떨어뜨리며 몸을 지켜낸 나무의 의연함뒤에는 비에 젖은 나뭇잎의 잔해가 잔혹스레 딩군다. 그러거나말거나 오늘의 하늘은 말갛게 씻긴 얼굴을 하고, 선명히 윤곽을 드러낸 구름하나 걸쳐두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은 11월에 어울리지않는 다정한 따뜻함이 묻어난다. 월요병이라는 말이 있지만 난 아무래도 금요병에 걸릴듯하다. 한주간의 피곤이 쌓인 탓도 있겠지만 14시간의 노동은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 편한 잠을 자본 적이 언제였을까? 잠과는 인연이 먼 사람이라 불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잠자리가 불편한건 불면과는 또다..

일상 2022.11.13

보라.

날이 차다. 마음의 온도는 이미 기준점아래로 떨어졌다. 11월에 들어서 예상치 못했던 따뜻함에 올해 느끼지 못하고 지나버린 인디언썸머를 떠올린다.하지만 11월은 11월이다. 몇일간의 이상기온을 깨뜨리고 뚝 떨어진 기온으로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리움의 색깔은 보라. 그리움의 온도는 화씨 30도. 그리움은 지독한 외로움. 혼자 딩굴다 펼쳐보는 카톡프로필. 끊임없이 쫓게 되는 그리움의 뒷모습, 한 줄 멘트로 상상하게 되는 그들의 일상. 그 조차 알 길 없는 이들에게 느끼는 냉담과 소외. 스트롤을 멈추게 되는 사진. 뜨거워지는 피. 그래, 낳은 배는 달라도 받은 피는 하나로구나. .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춤사위인지 알 수 없으나 이미 원(怨)과 한(恨)은 다 풀어져나가고 느림과 여유속에 안도한 언니의 ..

일상 2022.11.10

기러기.

T의 일을 알게 된 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닫아두었던 SNS를 열어 그간의 일들을 시간순으로 재배열해본다. 다시금 찬찬히 살펴보아도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의 게토(ghetto)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굳이 나중심의 세상은 아니었다할지라도 그들과 함께 어깨를 견주고 나란히 할 수 있었던 시공(時空)에서 나만 지워진거다. 아니 철저히 나만 거세당한듯한 느낌이 든다.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과 T와 짝을 맞춘 H만큼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울컥 눈물이 쏟아졌지만 어쩔수 없다. 자신이 속할 수 없는 리그를 바라보는 것은 잔혹하다. 어쩜 나도 그러했을지도 모르는 시간에 생각이 미치자 두려운 마음이 든다. 얼마나 많은 잣대와 공의로 재단하고,교만한 검열로 틈을 찾는 이들에게 아픔과 슬..

일상 2022.11.05

눈부신 안녕.

모진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의 분신을 잘라낸 나무는 붉디붉은 피빛의 눈물로 떨어진 잎사귀를 마주한다. 오히려 떨어져 나간 잎새는 가벼이 바람에 몸을 실어 분분히 땅으로 떨어졌다. 눈부신 잎사귀의 헌신. 삶을 향한 이기심이 시뻘건 잎맥을 세운 죽음앞에 처연하게 느껴진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이다지도 가까이 있다. 삶과 죽음이 마주한 그 자리에는 초록은 빛을 잃고 자꾸만 자꾸만 나뭇가지는 지면(地面) 가까이 기운다. 그렇다고 다시금 잇대어 붙일수도 없건만 무슨 미련이 남아 애써 땅으로만 고개를 떨어뜨리는 것일까? . 가을이 깊을수록 해는 짧아지고 그리움은 사무친다.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까닭은 내가 걷는 이 길이 낯설어서가 아니라, 그렇다고 두려운것도 아니지만 그건 아마도 슬픔이 ..

일상 2022.11.03

하늘보다 더 푸른.

고국의 가을보다 이쁜 곳이 또 있을까보냐만은... 뉴욕의 가을도 예쁘구나. 어쩜 짧아서 더 안타깝고, 더 소중한지도 모르지.... . 고국의 가을은 온 산이 불타듯 시뻘건 단풍이 주를 이룬다면 뉴욕은 온통 노랑.연두빛으로 다시온 '봄'과도 같다. 나는 오늘 그렇게 유명하다는 뉴욕의 중심 센트럴파크에 서있다. 유독 바람이 심하게 불었고,내일은 오늘보다 더 기온이 떨어진다고하니, 10월임에도 내복을 입어야겠다는 생각에 "여기에도 내복을 팔까?"..... 추위에 약한 나로선 이쁜 경치보다 다가올 겨울이 염려스럽고, 살아갈 일들에 생각이 기우는건 어쩔수없는 가난한 이의 삶인듯하다. . 거리를 거닐며 떨어진 낙엽들을 보아도, 찬바람이 불어도 고국의 가을보다 처연한 느낌은 없다. 색감이 주는 느낌도 있겠지만 민소매..

일상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