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다지도 삶이 무거운데....

huuka 2022. 12. 1. 11:38

6996마일을 날아가야 닿을 수 있는 곳이건만 날씨만은 닮아 있어, 이곳이 그곳인듯, 그곳이 이곳인듯 종종 나는 헤매이게 된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 마지막 남은 잎사귀를 기필코 다 떨어뜨려 놓겠다는 모진 바람에 가지는 이리저리 몸을 흔들고, 바닥을 뒹구는 낙엽은 내린 비에 반사되어 모체로부터 이어받은 자신의 색을 가감없이 토해버린다. 이렇게 한 계절이 또 지나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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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빛을 잃는다.
여름의 끝자락, 그러니 가을의 초입이라 할까. 브루클린 코니아일랜드비치를 찾았다. 아마도 한 두 전주즈음 총기사고가 있어 막둥이는 가지 않겠다고 했지. 이미 시즌이 끝난 비치였던 까닭에 놀이시설조차 멈추어 있었다. 그렇게 분주했던, 그렇게 들떠있던, 열기는 차갑게 식어 있었고, 시간을 낚는 은발의 낚시꾼들만 데크에서 볼 수 있었지. 바로 어제 같은 그날이 벌써 두어달을 지나 한해의 마지막 달이 되었다. 떠나기 전 그렇게 안녕을 고하던 이들은 정말 그렇게 마지막이 되고, 철저히 타인이 되어 가는 것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구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피상적인 관계. 부유하듯 떠돌던 삶은 마침내 돌아갈 곳조차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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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함량을 높여 처방받은 한달치 노란 약병이 내 삶을 비웃는듯하다. 아무리 몸부침쳐도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진 듯 나의 열심과 최선으로는 남은 삶의 평안도 기약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육체의 시간은 자연을 거스르지 못해 갱년기 열감으로 찬바람속에서 구슬 땀을 흘리게 되어 추위를 잊는다. 땀을 한바가지 흘리고 찹찹해진 몸에 한기를 느낄 때즈음 문득 그리운 얼굴이 있다. 그들에게 나란 존재가 잊혀지고, 기억조차 하기 싫은 존재인지는 알 길 없지만 외로운 타향살이에서 그리운 이가 있다는 것은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되어 다행인지도 모른다.살아남는 것. 어찌 내 살아낸 삶이 그러했듯 남은 삶조차 살아있는 것에 그 모든 의미를 부여해야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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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이다지도 무거운데 머리까지 무거울 필요있을까. 아니 머리카락을 자른다고 무거운 삶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거울을 보며 혼자 가위질을 했다. 어느새 엉치뼈가까이 내려온 머리를 묶을 수 있을만큼만 남겨두고 잘라냈다. 한결 가벼워진 머리. 삶도 잘려진 나간 머리카락의 무게만큼 가벼워졌을까.사람의 뒷모습이 깔끔해야 한다지만 앞모습만 보고 잘랐으니 뒷머리가 어떤들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안 보아도 뻔한 내 뒷모습은 삐뚤빼뚤하고 비스듬하겠지. 계산없이. 생각없이 닥치는대로 살아온 내 인생의 모습이 나의 뒷모습과 꼭 닮아있으리라. 부끄럽지 않게 살아내려했는데 돌아보니 그저 부끄러움만 그득한 삶이다. 그럼에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머리카락은 더딜지라도 자라있을 것이고 가지런히 정리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그날이 오면 이다지 무거운 삶조차도 가벼워지고, 가지런히 정리가 되지 않을까. 그런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날이 비록 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한결 가벼워진 머리로 나는 오늘을 살아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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