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조각보 깁는 밤.

huuka 2022. 11. 27. 13:38

늦가을비가 무겁게 내린다. 도로는 물론 나뭇가지에도 늦가을비는 무겁게 힘을 더한다. 비를 머금은 나뭇잎은 힘있게 물줄기를 올려 가지에 붙어 있으려하나 그 몸은 한없이 무겁다. 계절은 거짓이 없고, 조락은 피할 길이 없다. 그렇게 비는 무게를 더해가며 또다른 계절을 달려 나간다. 이번 가을을 한 줄로 기록하면 바쁘고 아팠다. 육체의 노동이 이렇게 힘들단 말인가? 몸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그 숭고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뷰티그로서리(Beauty Grocery)에서 일한다고 하니 누군가 뷰티가 들어가 나랑 어울린다고 했지. 그러게 말이다. 아름다움을 위한 뒷일은 고달프고 고통스럽다. 어디 아름다움뿐이랴. 우리가 먹고 사는 그 모든 것에 누군가의 노동과 눈물이 있음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것을 모르는 것이 부(富)이고 그것을 절감하는 것이 빈(貧)이다. 관계의 존재로 지음받아 단절이라는 감옥으로 자처한 유배는 외롭고도 처량하다. 답없는 메일을 쓰는 것도, 사라지지 않는 1을 보는 것도 슬픔을 더한다. 그럼에도 마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할만큼 나는 그 일에 집중하고 마음을 다한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거다.

후미진 굴다리 끝 한줄기 태양빛이 스며드는 곳에 붉디붉은 열매가 있다. 이리저리 디엉킨 줄기의 지저분함은 눈에 들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붉음만으로 전부인 열매를 보는 순간 전율이 인다. 서둘러 카메라를 드는 순간 빛은 사라지고 붉음을 삼키는 어둠이 내린다. 눈을 들어 빛을 쫓는다. 굴다리위가 기찻길이었구나.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기차.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철저히 이방인임을 다시금 깨닫는 찰라. 다시금 빛이 들고 붉다 못해 선홍색피빛의 비터스위트 나이트쉐이드(Bettersweet Nightshade)를 담는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는 작업. 그런까닭에 남겨진 사진첩은 밤잠을 잊어버리게 한다. 지나간 시간속 오늘이었을 그날 나는 무엇을 보고 어떤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려 숨을 죽이며 셔트를 눌렀을까....그립다라는 것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시간의 애잔함. 그때의 나는 오늘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때의 나는 핑크뮬리(Pink Muhly)속에서 잠시잠깐 핑크빛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지. 모든 것이 그렇게 흐릿하게 사라진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잡으려 애쓰고, 종국에는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무엇인가를 잡으려 애쓰는 것. 잡을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이 젊음이고 희망이고 열의였는지 누가 알까. 그때의 나역시 보잘것 없고 삶은 고통스러웠지만 그럼에도 핑크빛으로 기억되는 까닭은 젊음과 희망이 그리고 함께 할 그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가을이 깊어가듯 밤도 깊어가고 한몸이 되어버린 불면(不眠)은 끊어진 인연의 한 귀퉁이를 조각보 깁듯 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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