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보라.

huuka 2022. 11. 10. 10:48

날이 차다.
마음의 온도는 이미 기준점아래로 떨어졌다.
11월에 들어서 예상치 못했던 따뜻함에 올해 느끼지 못하고 지나버린 인디언썸머를 떠올린다.하지만 11월은 11월이다. 몇일간의 이상기온을 깨뜨리고 뚝 떨어진 기온으로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리움의 색깔은 보라. 그리움의 온도는 화씨 30도. 그리움은 지독한 외로움.
혼자 딩굴다 펼쳐보는 카톡프로필. 끊임없이 쫓게 되는 그리움의 뒷모습, 한 줄 멘트로 상상하게 되는 그들의 일상. 그 조차 알 길 없는 이들에게 느끼는 냉담과 소외. 스트롤을 멈추게 되는 사진. 뜨거워지는 피. 그래, 낳은 배는 달라도 받은 피는 하나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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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춤사위인지 알 수 없으나 이미 원(怨)과 한(恨)은 다 풀어져나가고 느림과 여유속에 안도한 언니의 얼굴을 본다. 벌써 무당이 된 지도 스무해가 다 되어가는구나. 그렇다면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 역시 그러하겠지. 모두가 떠나가고 등을 돌려도 가장 나중 남는것은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 아닌 내가 사랑한 사람과 피붙이라는 말이 맞는 말인가보다. 그래서 나의 그리움의 끝은 항상 그곳에서 멈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걸음을 걷기 시작 할 때 이름을 바꾸거나. 이전 것들을 삭제하고 정리한다. 언니는 이름을 바꾸었다. 누군가는 모든 소식의 문을 끌어 닫고 뒤돌아 섰다. 나는 머난 거리에서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되새김질한다. 차가워진 날씨만큼 마음 아리고, 차가워진 뺨에 느껴지는 눈물의 온도는 더 뜨겁다. 하지만 나는... 나는 치욕스럽게 오늘도 살아있다. 삶은 이미 아름다운 향기가 되지 못한 체. 자꾸만 고개가 숙여진다. 더이상의 노력도, 더이상의 애씀도 영광과는 멀고, 엉망이 되어버린 삶에 무죄(無罪)를 천명할 길도 없다.  얄퍅한 자식에 대한 책임으로 지나칠 만큼 가까이 다가온 죽음에게 손내밀지 못하는 질긴 생(生)의 욕구에 구역질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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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의 고통을, 다른 이들의 아픔을, 다른 이들의 슬픔을, 그 작은 몸으로 받아, 춤으로 내림받은 만신(萬神)께 올리는 언니야. 잘 지내지? 허공을 훠이훠이 젖는 무게 실린 가녀린 팔이 어쩜 이리도 다부지게 보일까. 언니의 반쪽짜리 동생의 삶은 더 큰 신. 참신께 바쳐진 삶이건만 다른 이들을 위한 도고를 잊은체 왜 이렇게 수치를 향해 달려가는 것일까. 삶이 설웁다. 오십이 넘게 살아도 쉬이 사는 방법을 알 길 없어, 고스란히 짊어 진 삶의 무게가 자꾸만 나를 주저앉게 만든다. 날씨가 차가울수록 하늘은 푸르고 시리다. 

계절을 잊은 장미는 찬 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할지언정 이름에 걸맞는 위엄은 잊어버리지 않았다. 가녀린 꽃대, 멍울진 꽃잎이라도 제대로 가시까지 둘렀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 나는 언제즈음 잃어버린 나의 이름을 찾고 그리운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을까. 바람이 차다. 그리고 어둠이 내린다. 사위를 두른 적막이 나를 짓누른다. 집에 가자. 곤한 몸을 누이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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