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끝물이 달다.

huuka 2022. 11. 13. 05:57

달디단 끝물 사과처럼 오늘 가을은 아름답기만 하다. 어제는 하루종일 한여름 같은 태풍이 몰아쳤다. 예상치 못한 비바람에 나무는 온몸을 공포에 떨었다. 온 몸을 흔들어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것을 떨어뜨리며 몸을 지켜낸 나무의 의연함뒤에는 비에 젖은 나뭇잎의 잔해가 잔혹스레 딩군다. 그러거나말거나 오늘의 하늘은 말갛게 씻긴 얼굴을 하고, 선명히 윤곽을 드러낸 구름하나 걸쳐두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은 11월에 어울리지않는 다정한 따뜻함이 묻어난다. 월요병이라는 말이 있지만 난 아무래도 금요병에 걸릴듯하다. 한주간의 피곤이 쌓인 탓도 있겠지만 14시간의 노동은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
편한 잠을 자본 적이 언제였을까? 잠과는 인연이 먼 사람이라 불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잠자리가 불편한건 불면과는 또다른 고통이다. 더욱이 맞지 않는 베개로 더 뒤척이게 된다. 이틀간의 뒤척임에 '악돌이.. 내 머리에 꼭맞는 악돌이를 들고 왔었야했는데...'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것은 악돌이다.악돌이는 이곳에 오기전까지 베고 잔 악어모양의 베개다. 함께 지낸 밤시간만큼 내 머리에 맞게 눌림이 생기고, 등이 터져 솜이 삐져나왔지만, 일자목인 내가 그나마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어디서 악돌이를 찾을 수 있을까...한인 이불점에라도 들려봐야하나...

멀지않은 곳에 공원이 두개있다. 한 곳은 15분거리의 Bowne park, 한 곳은 30분거리의 Kissena park다. 여유가 없을 때에도 초록바람이 그리울때면 Bowne park을 찾게 되지만, 이렇게 말갛게 씻긴 하늘을 보면 Kissena park까지 걷게 된다. 제대로 가을이다. 이렇게 시간은 궤도를 벗어남없이 흘러간다. 아무리 끝물이 아름다워도 11월의 반짝임은 10월과 같지 않다. 내 마음의 반짝임도 자꾸만 퇴색되어 간다. 삶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잠시잠깐의 강렬하고도 반짝이는 순간에 잠깐 숨구멍이 뚫였다 그 이후에는 지리하고도 묵직한, 보잘것없는 삶의 궤적들이 더해질 뿐이라는 것. 나의 하루역시 하찮은, 그럼에도 어깨를 눌러오는 노동이 주는 무게의 연속선상에서 순간의 반짝임을 통해 숨을 내 쉴 뿐이다. 나뭇앞 사이 비취는 가을 햇살. 무엇이라 기록될 수 없는 변변찮은 일상속에서 돌아본 과거의 웃음. 피사체를 쫓다 돌아보면 언제나 그자리에 있어 주었던 얼굴. 나른한 볕아래 기지개켜는 고양이.중저음이 강한 째즈. 지루하게 반복되는 파도치는 바다. 나붓나붓 낙엽을 떨구는 바람. 떠나와서야 비로서 알게 되는 소중함.
.

호수에 떠다니는 백조. 부풀린 하이얀 몸통과 늘씬한 까만 발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우아함. 노란 부리 위에 박힌 검은 눈은 순진무구. 결코 서두름이 없는 몸짓에 모든 시간들이 집중한다. 만약 물 위의 파장이 일지 않았다면 모든 배경들이 숨을 죽였을터. 다행이다. 나도 참았던 숨을 몰아쉰다. 출구가 없는 모순과 고통의 밤은 언제나 그리움과 후회로 이어지고, 꼭 죽을것만 같은 힘듦속에 뒤척인 밤도 지났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살아서 가을의 끝물아래 서 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각보 깁는 밤.  (0) 2022.11.27
행운의 사나이  (0) 2022.11.17
보라.  (0) 2022.11.10
기러기.  (0) 2022.11.05
눈부신 안녕.  (0) 2022.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