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138

각인.

어떤 한 사람의 기억은 첫 말과 끝 말로 기억되기도 한다. 특히 언어에 민감한 나는 첫 말과 끝 말에 그 사람이 각인된다. 그런 까닭에 가능한 첫 말은 조심스럽게 끝 말은 좋은 기억을 남길수 있도록 한다. 모질게 말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상황이 변하지 않는 그 끝을 벼린 말로 상대방뿐 아니라 자신을 베어버리는 어리석음을 갖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그게 쉽나? 그렇지 않다. 이미 사단이 난 상황에서 어찌 고운 말이 나올까? 그 순간 인격이 드러나게 되는지도 모른다. 상대에 따라 갖는 마음자리가 다르고 오래 정주고 마음 준 사람에게는 처음이나 끝이나 한결같은 마음이길 원한다. 싸울수도 있고 서운할 수도 있지만 엎치락 뒤치락 할지라도 처음과 끝 만큼은 한결같은 곡진한 마음으로 맞고 보내고싶다. . ..

일상 2022.07.06

강하지는 않지만 강합니다.

살면서 몇 번의 이사를 했을까? 어른들 말씀에 역마살이 낀 인생이라 적지않게 나라밖 나라안을 떠돌았다. 그럼에도 운이 좋았던 걸까? 단 한번도 나혼자만의 힘으로 이사를 한 적이 없다. 이삿짐 센터에 맡긴다 할지라도 소소하게 할 일들이 있다. 간서치로 살아온 나는 세상물정도 어둡지만 일도 잘 못한다. 일 할 몸. 일 못할 몸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몸이 익숙지 않아서, 일머리가 없어서 일을 하고나면 도움을 받는 것보다 병원비가 더 들어서 일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2곳으로 이삿짐을 보내고, 세간살이를 처분해야하며, 2중부담인 이사비를 줄여보려 포장을 혼자 힘으로 하다보니, 참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더불어 그 많은 이사를 참 편하게 했었구나. 그동안 내가 다른 사람의 수고..

일상 2022.07.05

서재를 떠나보내며.

책장의 책들을 박스에 옮기니 80여 개가 된다. 미처 정리하지 못해 박스째 베란다에 둔 것과 합하면 90박스가 넘을 듯하다. 통장에 잔고는 하나 없지만 이렇게 책 박스는 늘었다. 라이프 스타일? 지적 허영심? 모르겠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구입하고 간직했을까? 다 읽지 않았다 할지라도 아니 절반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이런 삶의 모양일까? 다독이 중한 것이 아니라 천천히 사유하며 내 것으로 만드는 독서가 중하다 누군가 말했다. 그래 그 말이 옳다. 빠르게 읽고 빠르게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한 권을 읽고 낯설게 보고 틈을 가지고 생각해보는 것. 기필코 몸으로 읽어내고야 마는 체독이 중하다 생각하는데 나는 얼마나 실천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단지 활자중독이었는지, 다만 책을 사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것이 ..

일상 2022.07.04

기차는 다니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기차는 오지 않습니다." 내 눈은 오지 않는 기차를 찾고 내 마음은 닿지 않는 당신을 기다린다. 한바탕 비라도 쏟아져 내리면 좋으련만 습기로 무거워진 공기만이 어깨를 누른다. 이제는 그만 보내줘야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아무리 철길을 가꾸고 꾸며도 기차는 오지 않듯 내마음 접지 않는다고 마주할 이도 아니건만 뭐가 이렇게 힘겨운 것일까. 마음의 시름과는 상관없이 이다지도 꽃은 예쁘게 피었다. 차례차례 피어나는 저 꽃들처럼 내 인생도 피어날 순간이 있을까. 아니 이미 피었다. 져버린 것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해마다 꽃은 피고 진다. 내 인생의 한때가 피었다 져버린 것이라면 또 피어날 한해를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꽃이 피지 않아도 꽃봉우리 몫을 하는 초록무성한 잎이 있다. 굳이 져버린 꽃..

일상 2022.06.29

아가. 비마중가자.

곧 쏟아 부을것같지만 이녀석 막둥이를 닮았는지 꼼지락꼼지락 거리는 것이 영 오늘은 퍼부을것 같지 않다. 이런 날. 마치 비는 올듯한데 비가 오지 않아 온몸에 찌뿌둥하고 땀이 송글송글 맺히지만 마음자리에는 폭우가 쏟아질것만 같은. 그럴 때는 무엇으로도 마음을 잡을 수 없다. 망설이는 갈등의 한순간. 떠오르는 시구절이있고, 시인은 어서 빨리 차비를 하고 차한잔하게 오라 한다. . 그러게 말이다. 땅끝마을. 해남하고도 송지면 달마산 아래 미황사 이미 동백나무아래 흙으로 자신의 모습을 모두 감춘 시인 김태정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래 이 땅에 언제까지 있을까보냐. 얼릉 채비를 하고 걸음을 나선다. 미황사의 현판은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거룩이나 엄숙함과는 멀다. 5살짜리 막배운 아이의 글씨마냥 게발세발 적은 글씨를..

일상 2022.06.28

초여름의 꿈 - 라벤더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 아프다.라는 말이 있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보라색은 아무나 가까이 할 수 없는 색이었는데 말입니다. 아름다운 비단이란 뜻의 보라(甫羅). 고귀함과 권력을 나타내는 색이기도 합니다. 보라색은 가시성이 나빠 인지가 어렵기에 몽환적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오늘은 보라의 바다에 가 마음껏 유영하고 왔습니다. 보라의 세상에 들어서면 "붕붕"거리는 벌소리에 이미 청각은 진공상태가 되어버립니다. 마치 체면에 걸린듯 휘청거리게 되지요. 정해진 길만을 따라 보랏길을 걸어가라 적혀있지만 그 길이 정확히 보이지 않습니다. 신비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모든것이 명확하다면 신비라는 이름은 걸맞지 않는 것일터이니까요. 평일이라 사람이 드문 것이었겠지만 곧 시작될 라벤더축제기간에는 정말 많..

일상 2022.06.21

곱씹기

본격적인 짐정리를 시작하면서 마음이 널뛰기 시작한다.책마다 남겨진 흔적들이 공간과 시간을 차지하고 움직이는 손은 테이프늘어지든 늘어진다. 일이 하기 싫어서가 아닌 이런 삶이 싫어져서 자꾸만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사랑도.사는것도 다 피곤해져서 오직 쉬고 싶은 마음뿐.이 땅 어디서 쉴 수 있겠나 생각하니 다시 떠오르는건 또 어두운 죽음뿐이다. 내일이 없어지면 좋겠다.간.절.히.

일상 2022.06.19

보고싶다고 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보고 싶다고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물마다 다 자기의 때가 있고 그때를 보지 못한다면 그 한 해는 볼 수가 없다. 내 마음은 보길 원했고, 내 때가 얼마 남지 않아 꼭 보고자 했지만 원하는 건 나의 마음일 뿐 그것은 자기의 때에 자기의 몫을 다할 뿐이다. 백련이 보고 싶었다. 이맘때면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아직 몽우리조차 올라오지 않았고 몽우리를 받치기 위한 연잎만 풍성하니 연밭을 메우고 있었다. 혹여나 볼 수 있을까 해서 저 넓은 연밭은 크게 한 바퀴 돌았다. 하지만 만물은 다 때가 있는 법. 그 얼굴을 보기에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로 하나보다. 한 달 뒤면 난 이미 없는데 말이다. 올해의 연은 보지 못할 듯하다. 하지만 ..

일상 2022.06.16

고양이는 없었어요.

모처럼 쨍한 하늘을 볼 수 있었어. 내가 좋아하는 바람도 불었으니까 어쩜 오늘처럼 좋은 날은 드물지도 모르겠다. 우연처럼 지나갔던 간이역인 몽탄역. 자그마한 역이었지만 기차박물관이 있었고, 몽탄역을 지키던 고양이가 있었다. 그 생각에 고양이 사료와 간식을 챙겨서 갔지만 그때 그 고양이는, 아니 그 고양이가 아닐지라도 고양이는 없었다. 몽탄은 꿈 몽자에 여울 탄자를 적어 꿈속에서 계시를 받아 건넌 여울이란 뜻으로 고려를 세운 왕건의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라 하니 가히 그 역사는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왠지 신비감이 넘치는 몽탄이 그렇게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몽탄역을 지나는 기찻소리가 들리는 식영정까지 들어가 보았다. 수령 500년을 훌쩍 뛰어넘은 보호수들로 둘러쌓인 식영정은 모..

일상 2022.06.15

여름의 문턱.

짧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령(嶺)에는 나무가지를 흔드는 비와 바람이 있다. 몇 번의 비와 몇 번의 바람의 문턱을 지나면 자신의 몸보다 큰 얼굴을 가진 수국이 핀다. 수국(水菊)은 초 여름에서 무더운 여름 중순까지 피는 꽃이다. 꽃말은 수국의 색만큼이나 다양하다. 냉정, 냉담과 무정,변덕, 변심인데 초여름의 변덕스런 기후변화를 반영한 꽃말인듯하다. 또,다르게 진실한 사랑, 처녀의 꿈, 진심,인내심이 강한 사랑이라는 꽃말도 존재한다. 왠지 후자의 꽃말에 마음이 가는 건 이 더위속에 시원스레 꽃대를 올리고 작디작은 꽃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부케로 보이는 것이 인내심이 강한 사랑이라는 꽃말이 훨씬 어울릴듯하다. 꽃의 색으로 토양의 pH를 확인할 수 있는데, 정상토양에선 핑크색, 산성토에선 푸른색을 띈다고 한..

일상 2022.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