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기차는 다니지 않습니다.

huuka 2022. 6. 29. 23:01

"아무리 기다려도 기차는 오지 않습니다."
내 눈은 오지 않는 기차를 찾고 내 마음은 닿지 않는 당신을 기다린다. 한바탕 비라도 쏟아져 내리면 좋으련만 습기로 무거워진 공기만이 어깨를 누른다. 이제는 그만 보내줘야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아무리 철길을 가꾸고 꾸며도 기차는 오지 않듯 내마음 접지 않는다고 마주할 이도 아니건만 뭐가 이렇게 힘겨운 것일까.

마음의 시름과는 상관없이 이다지도 꽃은 예쁘게 피었다. 차례차례 피어나는 저 꽃들처럼 내 인생도 피어날 순간이 있을까. 아니 이미 피었다. 져버린 것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해마다 꽃은 피고 진다. 내 인생의 한때가 피었다 져버린 것이라면 또 피어날 한해를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꽃이 피지 않아도 꽃봉우리 몫을 하는 초록무성한 잎이 있다. 굳이 져버린 꽃망울을 기다리지 않아도 좋은지도 모른다. 꽃은 저물었는지 모르나 존재만으로 아름다운것이 있고, 굳이 아름답지 않아도 자신의 몫을 다해 살아내는 이 땅의 작은 생명들이 있는 것처럼 나역시 오늘 하루 살아낸 것만으로도 기적이 아닐까.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약을 먹을때마다 누군가의 곡진한 기도소리를 듣는다. 내 마음이 향해야 할 곳은 상처뿐인 미련이 아닌 기도소리인지도 모른다. 괜찮아 지고 있고, 괜찮아질거다. 의사도 그러지 않았나. 6개월에서 1년이면 된다고... 6개월을 채웠고, 하루 2번에서 한번으로 줄였다. 꽃이 진자리 꽃이 핀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우리들에게 존재를 알리는 초록잎사귀를 잊지말아야겠지.

차례차례 피고지는 저 꽃들처럼 그에게도 또다른 꽃대가 돋아나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있기를 바란다. 감정이란게 그런거구나. 원망과 미움. 후회와 절망. 그 모든 것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중력을 이기는 것은 없다했지. 썰물의 때가 되었나보다.나는 그로 인해 아프고 이 아픔은 또다른 기도가 된다. 그에게 희망이 그에게 새로움이 그에게 아름다운 꽃대가 다시금 돋아나기를... 그러기 위해 나의 미련따위는 접어두고 이제는 정말 보내줘야만 하는가보다.

나는 내가 화분에 담겨 거실에서 사랑받는 사시사철 푸른 아이비인줄 알았지만 겨울이면 앙상하게 말라버리는 담쟁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곳에서나 자라 흔하디 흔한 잡초처럼 밟히기도 하고 뽑히기도 하는 아무것도 아닌 그런 존재. 그럼에도 나에게는 담쟁이가 없는 숲은 밋밋하기 짝이 없고 나무조차 벌거벗은듯 하다. 내 사진 속에는 죽은 나무에게도 손을 내밀어 그의 몸을 감싸 새로운 초록 생명을 입히는 담쟁이가 있다. 내가 담쟁이에게 몰두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 여겼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구나. 담쟁이를 통해 나를 본 까닭이구나. 흔하고. 밟히기도하고 뽑히기도하는. 나무가 숲이 기와지붕이 돌담이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나로서는 아무것도 아닌 그가 있어야만 존재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이제 곧 일년의 반이 저문다. 새로운 달에는 조금은 자유로워지자. 움켜진다고 잡히는 것이 아닌 것.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에는 처음마음으로 떠나보내자. 아플 수밖에 없었던 서로를 축복할 수 있기를...

기다렸던 비가 마침내 퍼붓기 시작했다. 저렇게 시원한 소리를 지르며 내리려고 몇날을 땀흘리게 했나보다. 세찬 빗줄기가 이렇게나 반갑다니... 이 비가 그치면 꽃대가 부러진 가지도 있을 것이고 온몸으로 힘껏 마주하며 나무를 지붕을 벽을 오를 담쟁이도 있을 것이고..난 유독 아리고 아린 당신에게 안녕을 고하고 이 비가 그치면 당신을 위해 두손을 모으리라. 처음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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