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초여름의 꿈 - 라벤더

huuka 2022. 6. 21. 22:00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 아프다.라는 말이 있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보라색은 아무나 가까이 할 수 없는 색이었는데 말입니다. 아름다운 비단이란 뜻의 보라(甫羅). 고귀함과 권력을 나타내는 색이기도 합니다. 보라색은 가시성이 나빠 인지가 어렵기에 몽환적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오늘은 보라의 바다에 가 마음껏 유영하고 왔습니다.

보라의 세상에 들어서면 "붕붕"거리는 벌소리에 이미 청각은 진공상태가 되어버립니다. 마치 체면에 걸린듯 휘청거리게 되지요. 정해진 길만을 따라 보랏길을 걸어가라 적혀있지만 그 길이 정확히 보이지 않습니다. 신비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모든것이 명확하다면 신비라는 이름은 걸맞지 않는 것일터이니까요.

평일이라 사람이 드문 것이었겠지만 곧 시작될 라벤더축제기간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릴듯합니다. 하루의 시름은 그 하루로 족하다 했지요. 어제의 시름. 내일의 시름은 오늘은 그냥 잊고 가려고 합니다. 하루즈음은 그런 날도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작년에는 꽃무릇을 보았더랬습니다. 평생 볼 꽃무릇을 한번에 다 보았지요. 올해는 라벤더를 봅니다. 그때도 유난히 날이 더웠었는데 오늘도 온몸이 땀으로 뒤덮혔습니다. 곧 장마가 올 것을 습기가득한 공기가 바람이 전하고 있습니다. 

선운사에는 이미 한 걸음 앞서 여름이 와 있었습니다. 빗겨난 계절은 전혀 다른 풍경을 지니고 낯설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들은 조금씩 변하고 기억은 바뀌고 잊혀져 가는 것이겠지요. 

오늘의 나는 고창 선운사에서 미리 여름을 맛보고 청농원에서 라벤더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오늘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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