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아가. 비마중가자.

huuka 2022. 6. 28. 00:26

곧 쏟아 부을것같지만 이녀석 막둥이를 닮았는지 꼼지락꼼지락 거리는 것이 영 오늘은 퍼부을것 같지 않다. 이런 날. 마치 비는 올듯한데 비가 오지 않아 온몸에 찌뿌둥하고 땀이 송글송글 맺히지만 마음자리에는 폭우가 쏟아질것만 같은. 그럴 때는 무엇으로도 마음을 잡을 수 없다. 망설이는 갈등의 한순간. 떠오르는 시구절이있고, 시인은 어서 빨리 차비를 하고 차한잔하게 오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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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이다. 땅끝마을. 해남하고도 송지면 달마산 아래 미황사 이미 동백나무아래 흙으로 자신의 모습을 모두 감춘 시인 김태정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래 이 땅에 언제까지 있을까보냐. 얼릉 채비를 하고 걸음을 나선다. 미황사의 현판은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거룩이나 엄숙함과는 멀다. 5살짜리 막배운 아이의 글씨마냥 게발세발 적은 글씨를 보면 어지러운 세상사 모든 시름을 내려놓고 별천지에 걸음을 옮겨놓는 문을 열게 된다.

이미 구름은 산허리를 감싸고 천왕문을 오르는 계단에는 계절을 알리는 신록과 수국이 마주하고 있다. 이곳엔들 그림자가 없으랴. 명발당오라비의 글을 쫓아 산으로간 거북을 찾아 이곳을 찾았다. 처음으로 내 손에 쥐어진 카메라를 들고 구도조차 맞지 않는 앵글을 보며 웃음짓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습기가 가득한 오늘.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계단을 오르고 산을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남겨진 그림자 지우기. 하나하나 지우다보면 어느새 새 걸음을 걸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만큼은 온몸에 붙은 습기마냥 미련이 남고 눈물 흘릴수 밖에 없지 않은가.

모질게 그 생명을 이어가는 담쟁이가 나는 좋다. 마치 나의 분신을 보는 듯해서 일까. 하지만 담쟁이가 그려내는 세상은 혼자인 사물보다 그 사물들을 돋뵈이게 하듯 조화롭다. 종국엔 건물을 무너뜨리고 담을 무너뜨리는 고의가 아닌 악의가 있다할지라도 말이다. 보는 이에게는 감추어진 파괴력을 지닌 조화로움일지라도 나는 담쟁이의 조화로움이 그 초록이. 변덕스런 붉음이 좋다. 기와와 어울어진 담쟁이는 마음을 앗아가기에는 충분조건인지도 모른다.

계절은 머금은 수분만큼이나 농도를 더해간다. 푸르른 신록은 내리는 비로 충분히 잎사귀에 농담을 더해갈것이고 차나무는 하이얀 꽃을 비가 지나면 피워낼터이지. 내가 애쓰지 않아도 시간을 흘러가고, 기억도 어느정도 미화될 것이라 오늘의 차가운 말들은 잊어버릴수가 있을 듯하다.그런 까닭에 사랑은 영원할 수 있고 계절을 따라 새롭고도 아름답게 다시금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떠오를수 있는 것 아닐까.
지금은 수국의 계절, 나는 그 수국의 아름다움으로 당신에게 문안하고 좋았던 것만 기억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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