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몇 번의 이사를 했을까? 어른들 말씀에 역마살이 낀 인생이라 적지않게 나라밖 나라안을 떠돌았다. 그럼에도 운이 좋았던 걸까? 단 한번도 나혼자만의 힘으로 이사를 한 적이 없다. 이삿짐 센터에 맡긴다 할지라도 소소하게 할 일들이 있다. 간서치로 살아온 나는 세상물정도 어둡지만 일도 잘 못한다. 일 할 몸. 일 못할 몸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몸이 익숙지 않아서, 일머리가 없어서 일을 하고나면 도움을 받는 것보다 병원비가 더 들어서 일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2곳으로 이삿짐을 보내고, 세간살이를 처분해야하며, 2중부담인 이사비를 줄여보려 포장을 혼자 힘으로 하다보니, 참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더불어 그 많은 이사를 참 편하게 했었구나. 그동안 내가 다른 사람의 수고를 먹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박스에 넣어도 넣어도 줄지 않는 책들에, 옮길 때마다 손톱이 부러지고, 다리에 멍이 들고,허리가 뻐끈해지지만 그래도 책을 쓰다듬고 박스로 옮기는 손길이 책 첫장을 넘기게 될 때, 모든 공기의 흐름은 멈춰지고, 숨마져 내뱉지를 못하는 그리움이 지나간다.비워진 책장에 등을 기대고 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그때였을까?
거의 3천권에 달하는 책을 떠나보내고 알라딘에 주문한 책이 배송지연이었는데, 오늘. 딱 좋은 오늘 마법처럼 내 손에 들려졌다. 책이 주는 위로와 기쁨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 대책없는 책 사재기가 책을 떠나보내며 또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독서의 습관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독서의 방향도 달라질듯하고, 삶의 자리가 바뀌는 만큼 손에 들려지는 책조차도 변화될 것 같다. 예전처럼 책을 쉬이 사고, 선물받을 수 없는 곳으로 가게 되지만 뭐 어떠랴. 손에, 지닌 가방에, 작은 내방의 책장에 채워진 책만으로 충분한 우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읽고. 또 읽고, 몇 번을 읽어도 배움이 끊이지 않는 것들로만 채웠으니 후회는 없다.
큰아이가 찍어준 사진. 엄마의 걸음을 등뒤에서 응원하는 아이들이 있다. 함민복 시인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을려고 흔들리는 나무를 보고, 그 흔들림이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라 했다. 내 삶도 흔들리 않으려 흔들렸고, 흔들려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때도 있다. 두려움과 불안이 나를 잠식하지 않도록, 삶을 돌아보고, 지나침은 아니 미침만 못하니 적당히. 살아있는 동안에는 춤을 추는 마음으로 지낼 수 있다면, 강하지 않지만 나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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