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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 사진.

아마도 담양 메타세콰이어길이었던 것 같다. 마주잡은 손과 다감하게 바라보는 웃음 띤 얼굴. 무심코 펼친 책에서 팔랑이며 사진 한장이 떨어졌다. 잊혀지기를 거부한 얼굴이 거기에 있다. 그 사진 속 나는 지금 보다 젊었고,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했다. 눈물 짓는 날이 많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날을 웃었다. 사랑스런 날만 남기기로 작정한 나라서 나는 모든 것이 그립고 모든 것이 안타깝다. . 처음 Bowne Park을 찾았을 때 연못정화공사로 펜스가 쳐져 있었다. 펜스 너머에는 어릴 적 보았던 수양버들이 초록가지를 연못속 자기 모습을 향해 줄기를 길게 길게 뻗어 있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났다, 그리고 어느새 봄을 품은 겨울이 지나고 있을 때 펜스가 사라졌다. 초록수양버들은 잎을 다 떨구고 어느새 황금..

일상 2023.02.11

온전히 나다운.

온전히 나다운 것이 무엇일까? 아마도 나 자신이 무리하지 않아도 되고 가장 편안한 상태일 때 그것이 가장 나다운 것 아닐까? 그렇다면 스스로 무리하지 않으며 마음이 편안하고 아니 유쾌할 수 있을 때는 언제일까? 비교적 오랜시간동안 청소년 사역을 할 때가 가장 나답다 여겼다. 아이들과의 시간이 즐거웠고, 그들을 성장시키는 일에 보람을 느꼈다. 아마도 내 인생의 주기율표중 가장 빛나고 아름다웠던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을 지키고 누리기 위해 또다른 시간은 마음 졸이고 스스로를 옥죄며 무리할 수 밖에 없었던 시간이 있었다. 나의 순수한 열정과 달리 굽은 시선속에 입술을 깨물어야 할 때도 있었고, 내 삶의 다른 한 부분을 내려놓기도 해야했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그 시간으로 충분했지만 나는 분명 무..

일상 2023.02.03

너와 나는 다르다는 이름으로.

kxx. 난 아직 이 이름만 보면 오그라드는 가슴과 진정되지 않는 마음이 된다. 오늘도 그랬다. 모처럼 sns을 하면서 보고픈 이들의 소식을 스트롤하다 이 이름을 발견했다. 그녀와 나는 한 공동체에 있었는데 제법 규모가 커서 같은 소속이 아니면 얼굴 조차 알지 못했다. 내가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그 공동체를 떠날 무렵으로, 나의 치부를 캐어 까발리는 것이 자신의 의무인 것처럼 보이지않는 압력그룹으로 나를 압박해오는 중심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정의는 사실이다. 나는 이혼녀였고, 그녀는 한 남편의 아내이자 엄마였으니까. 또한 성경에는 이혼에 관한 엄중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으니 그녀의 말대로 나는 죄질이 나쁜 자격미달의 사역자임이 틀림없다. 그녀는 이런 나에게 자신의 아이를 맡길 수 없으니 나의..

일상 2023.02.02

삶의 한 가운데서 죽음을 노래하라.

"뉴욕은 이렇게 비가 자주 내리나요?" 나의 물음에 눈이 와야할 때 비가 내리니 오히려 다행이지 않으냐고 되물어오는 사람들. 그러게 한국에서 들려오는 한파소식이나 미국 곳곳에서 들리는 폭설에 비하면 불평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쨍한 날이 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해가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걷고 싶은 마음. 찬바람에 두 뺨은 얼얼해져도 햇살아래 곤한 몸을 말리고픈 마음이 든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지하철을 탓다. 기차나 버스에 비하면 불미스러운 일이 잦아 가급적이면 지하철을 타지말라는 주의를 들었지만 저렴한 교통비를 생각한다면 어쨋든 용기를 내어볼 일이다. 다행이 이용할 시간대가 출근 시간과 해지기 전이니 충분히 이용가치가 높다. 오늘은 시험삼아 목적지의 반까지 타고 되돌아 오는 연습을 했다. 처음은 늘..

일상 2023.01.28

나는 나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드물게 햇살이 들고 쨍한 코발트블루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다. 마침 마틴 루터 주니어 기념일로 off이기도하니 집에 있을수만은 없다. 이틀 심한 재채기와 콧물 알러지로 힘들게 보냈다. 다시금 심해지지 않도록 마스크까지 챙겼다. Fort Tottn이 종점인 Q13번에 올랐다. 휴일인까닭인지 사람이 없다. 창가에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다. 종점에 가까워지자 승객은 나 혼자다. 내리는 사람이 없으니 정류장을 연이어 지나치고 10분이나 더 빨리 도착했다. 이곳에서 내 힘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 바다가 그리울 때마다. 누군가가 보고플 때마다 이곳에 왔다. 여기서 난 기러기떼를 만났고 생애처음으로 그들을 가장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들의 날개짓과 울음. 그리고 먹이사냥과 휴식을 엿보았다. 그들이 생각보다 큰 몸..

카테고리 없음 2023.01.17

솔아.

이렇게 비가 잦은 곳인줄 어찌 알았을까. 일주일에 2-3일은 비다. 비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처럼 마음을 잡을 수 없는 날은 하루를 견디기가 쉽지 않다. 큰아이의 코로나감염소식은 마음을 가라앉게 한다. 이런 날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나에게 일이 생겨도 바로 갈 수 없다는 것. 카톡으로 낮밤의 시차없이 소식을 주고받는다고 해도 물리적거리는 무엇으로도 극복할 수 없다. 혼자서 끙끙거릴 아이를 생각하면 애간장이 녹는다. 그러나 어찌하랴 배달음식을 시켜주는 것외엔 기도의 손모으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 . 비가 내리는 길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이 길의 끝이 마치 아이에게 닿아있길 바라는 염원으로 걸었는지도 모른다. 40분가량 걸었을즈음일까. 어디선가 솔향이 짙..

카테고리 없음 2023.01.04

기분까지 투명해지는 날.

강원도 양구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추위를 이곳에서 맞게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낯설고 혼자여서 더더욱 추울수 밖에 없었던 몇일이 꿈같이 지나고 모처럼 쨍한 하늘과 회복된 영상기온이 조금은 걸어도 좋다고 말을 걸어왔다. 도대체 어느정도 넓은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이곳은 쳐다보는 도로 끝마저 아득하기만 하다. 마치 이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어 한 발자욱만 더 들여놓아도 밑을 알 수 없는 낭떨어지가 있을것만 같은 저 끝. 나는 도로 한 중간. 마주오는 차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다. 박제되는 시간 속에 나는 길을 잃는다.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이 낯섦은 무어라 설명할까. 그럼에도 날마다의 생활은 몸에 익어 혼자서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마주치는 얼굴색이 달라 어깨가 좁..

카테고리 없음 2022.12.30

바라나시

갠지즈강에서 떠오르는 해를 유일하게 볼 수 있다는 바라나시. 나의 22살 여름, 요가에 심취한 이종사촌이 인도 여행을 제안한 것은 그녀가 이미 3차례의 인도를 방문한 후였다. 그 시절은 배낭여행이 한창이었던 때였고, 거쳐 지나가더라도 세계 곳곳을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던 터라 한 나라를 거듭 방문한다는 것은 왠만큼 그 나라의 매력에 빠지지 않고서는 드문 일이었다. 나로선 인도가 처음이었고, 그녀의 적극적인 권유와 그녀의 재방문이라는 보증수표에 힘입어 망설임없이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공항에 내리는 순간. 나는 인도에 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무질서를 넘은 혼돈 그 자체인 이 인도를 내가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여행지에서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과는 확연히 다른 후각으로부터 느껴지는 거부감을 쉽사리 떨쳐낼..

카테고리 없음 2022.12.29

가문비나무

한여름에도 은빛이 감도는 가문비나무. 그 아래에 서면 서늘함이 느껴졌다. 은푸른 빛은 벼린 칼날처럼 차갑고 날카롭다. 그것이 나는 좋다. 나무가 주는 한기(寒氣)가 마치 다른 나무들과는 어울리기를 포기한 혼자만의 고독처럼. 자기만의 시간과 자기만의 공간을 가진 나무의 이기가 마음에 든다. 세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그 의엿함이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첫 눈이 내린 날 서둘러 바우니 공원을 찾았다. 딱 한 그루. 바우니 공원에는 많은 낙엽수들이 이미 잎을 떨구고 맨가지를 드러낼 때조차 뾰족한 잎의 은푸른 빛을 잃지 않은 가문비나무가 있다. 첫 눈을 맞은 가문비나무는 신비로운 은빛이 더 깊어져 숲의 모든 색들을 반사하는 반사경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이미 해는 정수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

일상 2022.12.20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

오늘처럼 하루종일 비가 내리면 시간도 공간도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낯설게 느껴져 헤매이게 된다. 마치 진공상태의 그 무엇처럼 시계의 바늘이 멈추고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들이 발이 닿지 않아 허공을 부유하는 것 같다할까. 그럼에도 모든 시간이 응집되어 그 무엇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서 금새라도 터져버릴듯한 기분. 다급히 셀폰 카메라를 작동시켜 내가 나를 바라보지만 셀폰속 자신이 처음보는 사람마냥 어색하기만 한 그 무엇. . 미안한 일들이 자꾸 생겨서 더 이상 그 어떤 사과로도 생겨버린 틈을 메우지 못할 지경이 되어간다. 이미 나는 포기한 상태인데 나를 놓지 않는 손이 이대로 나를 괴로움에 빠뜨려 죽게할 작정을 인듯 친절과 배려가 오히려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마음을 찌른다. 그럼에도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

일상 2022.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