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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

huuka 2023. 1. 17. 23:54

드물게 햇살이 들고 쨍한 코발트블루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다. 마침 마틴 루터 주니어 기념일로 off이기도하니 집에 있을수만은 없다. 이틀 심한 재채기와 콧물 알러지로 힘들게 보냈다. 다시금 심해지지 않도록 마스크까지 챙겼다. Fort Tottn이 종점인 Q13번에 올랐다. 휴일인까닭인지 사람이 없다. 창가에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다. 종점에 가까워지자 승객은 나 혼자다. 내리는 사람이 없으니 정류장을 연이어 지나치고 10분이나 더 빨리 도착했다.

이곳에서 내 힘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 바다가 그리울 때마다. 누군가가 보고플 때마다 이곳에 왔다. 여기서 난 기러기떼를 만났고 생애처음으로 그들을 가장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들의 날개짓과 울음. 그리고 먹이사냥과 휴식을 엿보았다. 그들이 생각보다 큰 몸집을 지녔고, 펼치면 제법 커다란 날개를 지녔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해안으로 내려 앉을 때 느릿한 날개짓과는 달리 우왕좌왕하는 발길질을 보았고, 그것이 얼마나 큰 소리를 내며 물보라를 일으키는지도 보았다. 오늘은 내 머리위로 그들이 날아갈 때 저런 어설프고 게으른 날개짓으로 어떻게 횡단을 하는지 염려가 되기도 했다. 햇살은 따뜻해도 바람은 차갑기만한 것이 한겨울을 지나는 정월의 날씨다.

오랜만에 카메라를 꺼냈다. 셔트를 누르는 손가락이 시리다. 맞바람으로 눈에 눈물까지 난다. 오래 있기는 힘들듯하다. 아름다운 풍경도 사진에 담는 행위도 혼자하는 모든 것은 고독으로 치환된다. 하지만 고독은 이 겨울에 어울리지 않다. 서둘러 집에 오니 휴일임에도 알라딘 소포가 왔다. 2주를 예상했는데 한주만에 왔다.  내가 좋아하는 메리 올리버와 다시금 읽기 시작한 프랑소와즈 사강의 리뉴얼판들이다. 그리고 또한 권은 이렇게 저렇게 미루게 되는 글쓰기 동기부여를 위해 은유의 책을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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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소와즈 사강을 좋아해 자기 딸 이름을 사강이라 붙인 사람을 알고 있다. 사강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나였지만 다시금 만나는 사강은 그녀의 세밀한 심리표현과 행간의 감정들이 깊이 와닿는다. 중첩되는 그녀의 삶까지도....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독서도 그 때가 있고 내가 찾기전에 책이 찾아오는 일이 있다는 것. 메리올리버의 <서쪽 바람> 기대가 컸던 탓인지 조금 실망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아마도 엄청난 항공료로 인한 계산속에서 나온 마음일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시(詩)란 전부일 필요가 없다는 것. 한 단어 한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재화의 가치를 지니고 무엇보다 메리올리버의 글이라면 사사로운 글에서조차 경이를 발견할 수 있으니 충분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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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은 이런 말을 했다. "다른 이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을 파괴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옳지 않다. 관계속에 있는 우리는 이렇든 저렇든 상처를 가져 온다. 나 자신을 파괴할 자유가 내게 있는지 모르지만 그 파괴로 인해 나와의 관계속에 있는 사람들은 크든 작든 그 영향을 받는다. 나 자신의 파괴가 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물며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조차 그 파괴에 왈가왈부하는 세상인데 말이다. 아마도 사강은 그 말을 통해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를 갈망했는지도 모른다. 당신들이 뭐라하든 내 삶은 내 것이야. 라고 말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온 이곳에서 그녀의 말이 다시금 곱씹히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