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이렇게 비가 자주 내리나요?"
나의 물음에 눈이 와야할 때 비가 내리니 오히려 다행이지 않으냐고 되물어오는 사람들. 그러게 한국에서 들려오는 한파소식이나 미국 곳곳에서 들리는 폭설에 비하면 불평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쨍한 날이 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해가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걷고 싶은 마음. 찬바람에 두 뺨은 얼얼해져도 햇살아래 곤한 몸을 말리고픈 마음이 든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지하철을 탓다. 기차나 버스에 비하면 불미스러운 일이 잦아 가급적이면 지하철을 타지말라는 주의를 들었지만 저렴한 교통비를 생각한다면 어쨋든 용기를 내어볼 일이다. 다행이 이용할 시간대가 출근 시간과 해지기 전이니 충분히 이용가치가 높다.
오늘은 시험삼아 목적지의 반까지 타고 되돌아 오는 연습을 했다. 처음은 늘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런 까닭에 두려움을 극복한 다음에는 해냈다는 성취감과 한뼘 성장한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14정거장을 지나 퀸즈프라자까지 가서 밖으로 나와 낯선 거리를 걸었다. 오로지 구글 맵을 의지해서말이다.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구글 라이브뷰를 이용하면 화살표로 목적지까지 가르쳐주니 이만저만 마음 든든한 게 아니다.
.
직장인들이 많아서 인지 플러싱에 비해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마침 점심시간이다보니 푸드몰에도 빈 자리가 없다. 빈 곳을 찾아 큐알코드를 통해 주문을 마치고 퀘사디아와 커피를 마시며 챙겨온 팀켈러의 책을 펼쳤다. 생(生)이 가득한 이곳에서 나는 < 죽음에 관하여>를 읽는다. 빠르고 높은 목소리로 주고받는 대화에 실려오는 웃음과 리액션 가득한 이들의 대화에는 에너지가 넘친다. 책장을 넘기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나 혼자뿐. 삼삼오오 짝하고 앉아 생을 유지하는 먹는 의식을 저렇게나 활력넘치는 동작으로 만들어가는 이들 속에서 마주하는 죽음은 슬픔이 아니라 오히려 환희로 치환되는 것은 이 땅에서의 즐거움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음을 믿는 까닭이겠지.
.
나는 자주 죽음을 생각했고, 그것보다 더 많이 삶을 생각했다. 늘 근근히 살아낸 삶이라 자랑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빈한 삶이고, 곳곳이 부끄럼으로 얼룩져 있지만 참 열심히 살았다. 때론 그렇게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 저주라 생각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아니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천벌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삶이 무거울수록 마음에도 어둠의 그림자가 짙어져 안에서부터 사각사각 나를 갉아먹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난 지금 명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이것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까닭이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노래하는 여인을 만났다. 스페니쉬처럼 보였지만 아닐수도 있겠지. 마치 동양인이 똑같아 보이듯 나의 눈에도 그들의 국적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니까. 사선으로 스피커를 매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mr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데 왠만한 가수 이상의 실력이다. 정거장과 정거장사이 그녀는 이 전철 칸칸을 돌며 노래를 불러온 것이다. 돈을 버는 행위인지 단지 노래를 좋아해서 이런 퍼포먼스를 하는 것인지 알 길 없다. 맑은 음색에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보았다. 왜 이세상 맑은 것들은 슬픔을 동반하는 것일까. 그녀의 무표정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생의 한가운데 살아내고자하는 절망이 있다. 그런 까닭에 오히려 우리는 생의 한가운데서 죽음을 노래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대화의 노래 - 조지 허버트
그리스도인 : 아 가련한 사망이여! 너의 영광이 어디 있느냐?
너의 소문난 위세와 예로부터 쏘던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 : 아, 자취 없이 죽을 가련한 운명이여!
내가 너의 왕을 어떻게 죽였는지 가서 자세히 읽어보라
그리스도인 : 가련한 사망이여! 그 피해를 누가 입었던가?
너는 그분을 저주하려 했으나 정작 저주받은 것은 너로다.
사망 : 패자가 말이 많구나.
더구나 너도 결국은 죽을지니 내 손으로 너의 숨통을 끊어 놓으리라.
그리스도인 : 얼마든지 너의 최악을 다해 보라.
장차 나는 이전보다 나아지겠으나 너는 훨씬 더 나빠져서 온데간데 없어지리라.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온전히 나다운. (2) | 2023.02.03 |
---|---|
너와 나는 다르다는 이름으로. (0) | 2023.02.02 |
가문비나무 (0) | 2022.12.20 |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 (0) | 2022.12.17 |
3줄21단어72자 (0) | 2022.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