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하루종일 비가 내리면 시간도 공간도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낯설게 느껴져 헤매이게 된다. 마치 진공상태의 그 무엇처럼 시계의 바늘이 멈추고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들이 발이 닿지 않아 허공을 부유하는 것 같다할까. 그럼에도 모든 시간이 응집되어 그 무엇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서 금새라도 터져버릴듯한 기분. 다급히 셀폰 카메라를 작동시켜 내가 나를 바라보지만 셀폰속 자신이 처음보는 사람마냥 어색하기만 한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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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일들이 자꾸 생겨서 더 이상 그 어떤 사과로도 생겨버린 틈을 메우지 못할 지경이 되어간다. 이미 나는 포기한 상태인데 나를 놓지 않는 손이 이대로 나를 괴로움에 빠뜨려 죽게할 작정을 인듯 친절과 배려가 오히려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마음을 찌른다. 그럼에도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계속해서 미안함을 저축해가고 그러다 종국엔 그 친절과 배려가 나를 졸라매는 올무가 될 것만 같아 두려움까지 쌓아가게 된다. 한번 어긋나버리면 처음부터 다시 고쳐 끼우지 않는 이상 점점 더 많이 어긋난다는 걸 알면서도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계속해서 나는 그 어긋난 길을 걷게 된다. 욕조에 앉아서 간절히 바랬던 바 그대로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내 피할방도였던거라 더더욱 어긋나지고 미안해지고 마치 더운 여름날 신발에 달라붙은 껌마냥 끈적하니 나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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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글을 새삼스레 읽어간다. 여전히 수려한 그의 문장은 칼로리 높은 음식을 먹은 것마냥 속이 더부룩해지는 것이 있다. 그런까닭에 조금씩 나누어 디저트처럼 애껴 먹으니 글맛이 배가 되고 이전에 놓쳐 버린 것들을 주워담게 된다. 마무리 되지 않는 설교문을 남겨두고 그의 책을 읽는다. 글을 적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생기지만 글은 여전히 써지지 않는다. 마치 출구를 잃어버린 말들이 연신 입구를 찾아 이벽저벽 더듬으며 두드리는 것 같아 속이 아려온다. 아직은 토해낼 때가 아닌 것이겠지만 길을 잃어버린 말이나 토해내지 못하는 글쟁이나 아프기는 서로 매한가지인듯 하다. 언젠가 다시 그 토해진 글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갈 때 땟갈좋은 옷으로 입혀 보낼 수 있도록 좋은 글들을 속에 꼭꼭 씹어 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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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것도 그리운 것도 시간이 지나니 그 간절함마저 평범한 것이 되어 간절함이 간절하지 않고 깊음도 깊은 줄 모르게 변한다. 그럼에도 툭하니 건드리면 눈물 한 방울 또르르 흘러내릴만큼 가득한 보고픔은 어쩔 재간이 없다. 보고픔과 그리움이 일상의 동력이 되어 나를 움직여가는지도 모른다. 살고 싶다. 간절히 살고 싶다. 이 삶에서 언제 벗어날지 알 수 없으나 다시한번 붉은 배롱나무 꽃과, 꽂꽂이 허리를 편 백련을 보고 소슬바람 부는 대청마루에 허리를 누이고 싶다. 그곳에도 차가운 겨울이 왔을 터이고 이곳에는 오늘밤에도 비가 내리지만 그곳에는 눈이 온다지. 눈이 온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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