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

주님. 가을이 이다지도 예쁜데.....

huuka 2017. 10. 20. 16:15

<일상 이야기>

주님.

가을이 이다지도 예쁜데....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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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한 자리 아물기를 기다리다보니 머리 감는것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십여분에 걸쳐 겨우 머리를 감고  그것도 힘들어 침대에 잠시 누우니 눈물이 납니다. 이때까지 자유자재로 움직였던 몸이 제기능을 하지못하고 말을 듣지 않습니다. 몸의 불편을 겪고 나서야 인간의 유한함과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지극히 적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교만한 일입니까? 하루하루를 살아 온것이 나의 힘, 나의 의지 나의 노력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님을 이제야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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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무 잎사귀를 흔드는 가을 바람소리를 들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깃들어있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바다를 옮겨 놓은 듯, 그 푸르름 속에 하얀 구름들이 섬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손가락을 올려 푹 찔러 보면 파란 바닷물이 떨어질듯한 그런 청명한 가을하늘이였죠. 주님. 가을이 이다지도 예쁜데 말입니다.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남이 눈부시게 이쁜 가을하늘탓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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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가 살아갈 힘이 없다고 했습니다.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저는 이내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감싸는 가을바람과 눈부신 햇살을 어깨에 쏟아놓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냥 울었습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주님. 가을이 이다지도 예쁜데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예쁜 가을때문에 우는 겁니다. 그리고선 가을하늘에 이렇게 묵언으로 속내를 털어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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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살아가게 한 힘이 무엇이었어? 나는 주님으로 인해 살아왔는데... 당신을 살아가게 한 힘이 물질이었어? 자식이었어? 사람이었어? 왜? 지금 빈한 손, 외롬이 엄습하니 살아갈 힘이 없는거야?" 라고.....말하고 싶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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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왜 말을 삼켰을까요? 아마도 부끄러움과 위선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정작 나 자신은 살아갈 힘을 잃은 것이 아니라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자였기 때문입니다. 주님. 가을이 이다지도 예쁜 까닭은 당신이 만드신 세상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아름답겠지요. 당신의 솜씨를 자랑하면서 당신을 온몸으로 찬양하면서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서 있기에 이다지도 아름다운 것일겁니다. 하지만 주님. 저는 부끄러웠어요. 아직도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죠. 내가 없어도 아름다운 세상이 싫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내힘으로 아빠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교만이 남아있는 양심을 건드렸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지만 주님. 사실은 말이죠. 당신의 안타까운 마음이 나의 마음을 두드렸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딸아. 가을이 이다지도 예쁜데 너는 무엇하고 있느냐..... 주뼛주뼛 고개숙인 나를 바라보는 아빠 하나님의 안타깝고 아파하는 마음이 저의 눈물샘을 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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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침대끝에 사고뭉치 고양이 카무가 올라 왔습니다. 저는 연한 발길질로 카무를 침대에서 밀어내렸습니다. 연한 발길질이라도 그 발끝에 머문 폭력은 작디작은 고양이를 겁먹게 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내 안에 머문 폭력성과 악함을 저는 압니다. 거짓과 위선이라는 죄악도 저는 압니다. 아니 잘 알고 있지만 이때까지 꼭꼭 상자에 넣어 잘 덮어두었습니다. 많은 변명과 이유로 그것들을 피해가는 방법도 익숙합니다. 교회제도의 잘못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이미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나의 유약한 믿음은 그 교회가 나를 지켜온 최소한의 울타리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무너져내리는 일상의 영성이라는 것이 참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보다도 가벼운 것임을 깨닫게 될 때. 모든 것이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과연 아버지의 뜻으로 행한 사역들이 얼마나 될까를 돌아보면 내 자신의 족적들을 살랑이는 가을바람에 모두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사랑을 가장한 무례함과 가르침으로 포장한 폭력등으로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했을지.... 지금 흘리는 눈물로도 모든 것을 갚을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주님. 가을이 이다지도 예쁜데...어쩌면 당신도 울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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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의 마음을, 아니 아빠 하나님의 마음을 더 알고 싶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며 나의 위선과 나의 악함속에서 울고 계시는 당신을 느끼고 싶습니다. 나의 고통속에서 어찌할 바를 알 지 못하는 당신을 깨닫고 싶어서 그이가 권한 책을 펼쳤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 십자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 수치. 고통. 저는 지금 제대로 십자가에 달려 있는 듯합니다. 내가 십자가에 달림으로 당신 또한 십자가에 달려있음을 압니다. 주님. 가을이 이다지도 예쁜데 말입니다. 십자가는 내 눈앞에, 당신의 눈앞에 서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말입니다. 치열하게 당신을 느끼고자 원하는 저에게 처절하게 당신은 다가오십니다. 이렇게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가을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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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가을이 이다지도 예쁜데 말입니다. 저는 그 눈부심에 길을 잃고 울고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