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와 일상이야기 >2017.10.12
가을비가 잦은 요즘이다. 나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한 날씨인듯. 내 마음도 쨍하지 않다. 어제는 그이와 2주만에 하분을 다녀왔다. 필요한 책들을 가져오기 위해서다. 매번 갈 때마다 트렁크가 넘칠만큼 책을 챙겨온다 그렇다고 하분집 책이 줄어드는 느낌도 없다. 하지만 우리집은 야금야금 옮겨오는 책들로 공간이 잠식당해가고 있다. 책을 옮기기 위해 내려온 큰 아들 녀석이 화를 낸다. 쌓아둘 곳도 없으면서 자꾸 왜 들고 오냐고....어쩌면 생각없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 죽어라 책을 갖고 오는 그이와 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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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쌓을 벽면이 없다. 이번에는 뒷좌석에 3단책꽂이도 들고 왔건만 책을 꼽고도 방바닥에 널부러져 벽면에 쌓아올린 책을 2줄로 겹쌓기를 했다. 책을 정리하면서 막둥이가 책한권을 들고 이렇게 말한다. "엄마아빠를 위한 책이네요."돌아보니 클라스 후이징의 "책벌레"다. 그이의 서가에서 한눈에 반했다. 책제목은 기괴한 필체였고 그림이 주는 기묘한 느낌과 조금은 엔틱한 색채감각이 나의 구미를 당겼다. 활자중독자인 나!. 책벌레가 나의 뇌속을 갉아먹듯 나는 책에 매료당해 트렁크에 가장 먼저 집어 넣었던 그 책. 당장 살아갈 생계를 걱정해야 할 판에 벽면가득 책을 쌓고 행복해지는 건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가슴 두근거림은 무엇이란 말인가? 왕복 7시간 지칠대로 지친 몸이지만 책을 읽고 싶은 욕망에 12시를 넘겨 독서에 빠져든다. "책벌레"를 읽다. 마치 광산을 발견을 사람처럼 나는 그이에게 외쳤다.
"자기야. 침대를 중간에 놓으면 한쪽 벽면을 더 사용할 수 있어. 책을 더 쌓을 수 있어. 책벌레에 나와있네."
내 말을 듣는 그이도, 이런 말을 하는 나도 참 현실성 없는 바보 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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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 후이징의 "책벌레"는 독특한 책이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딱히 이 책이 갖는 의미와 내용을 정리해보라면 정리 할 수 없는 나에게 넘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유명한 초 A급 배우들을 까메오로 대거 출현시켜서 보는 동안은 눈을 즐겁게 하고 대단한 듯하지만 영화가 끝나게 되면 무슨 내용이였는지 빈 껍데기만 남는 그런 느낌? 책에 대한 광적인 집착으로 살인을 저지른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 그를 쫓는 다른 세대의 팔크 라인홀트 슈바빙. 조금은 황당한 설정이지만 작가 클라스 후이징의 참신함과 유머스러움으로 독자의 집중을 끌어내는 작품. 결국 그는 이 글을 통해 책이란 무엇이며 책읽기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읽는 이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에 대한 답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읽는 이들 저마다의 답이 존재할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책은 무엇이며 책읽기는 무엇일까? 생존의 위협속에서도, 건강을 잃어가면서도 끊임없이 책을 읽고 기록하는 나에게 있어 책이 갖는 의미와 책읽기의 효용은 무엇이란 말일까? 스스로 장서광(藏書狂)이 아닌 애서가(愛書家)임을 자처하지만 거의 집착에 가까운 책사랑은 나의 몸과 삶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럼에도 이런 삶을 통하여 누군가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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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발견한 보석들을 옮겨본다.
눈길을 끄는 소제목들.
"그는 책 트렁크를 풀고 하연 벽 속으로 사라진다."p22
"첫번째 양탄자. 글은 고아소년과 같다."p31
"그는 슈바빙에서 산책을 하다가 책의 산으로 올라간다."p46
"그는 텍스트를 뇌피질에 새겨넣고 삼단논법의 매력을 발견한다."p69
"네번째 양탄자. 책들에는 얼굴이 있다."p96
반짝이는 책속 글.
"글자들은 자석처럼 그를 끌어당겼다. 그에게 텍스트는 북극점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언제나 희미한 소리와 미묘한 불일치와 놓치기 쉬운 의미를 찾기 위해 텍스트에 귀를 기울이고 뿌연 안개 속을 헤짚으며 언어의 배열을 더듬고 미묘한 뉘앙스를 파악하고 탁한 증기와 신선한 공기를 구별했으며 텍스트를 의미의 관절들로 나누고 마지막으로 메타퍼적 완충장치를 점검했다."p107-108
"한 인간의 삶을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삶에 오롯이 빠져들고 그 삶을 진지하게 되폴이해야 하지 않겠는가?"p151.
"Habent sua fata libelli.-테렌티아누스 마우루스 ..........."책들은 저마다 운명을 지니고 있다."
Pro captu lectoris habent fata sua libelli. ..................."독자가 어떻게 읽는가가에 따라서 책들은 운명을 달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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