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기억이 박제되는 곳.

huuka 2023. 6. 3. 11:37

1941년 문을 연 브룩클린 공립도서관이다. 7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해 한시간 십여분만에 도착한 곳. 지하철에서 멀지않아 헤매지 않았다. 마침 오픈 시간도 9시라 기다림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단지 건물모양이 책모양으로 지어졌다는 말을 듣고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역시 오길 잘했다. 

이 도서관은 미국에서 5번째로 큰 도서관인데 무엇보다 멀티미디어 관련 자료가 많은 곳이다. 또한 에스프레소 북 머신을 이용해 서적의 주문형 도서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도서관은 책을 보관 보수하는 곳으로만 알던 나로서는 책을 제작한다는 말은 생소하고도 경이롭게 느껴졌다. 한국 도서관에도 이런 서비스가 제공되는 지는 알아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도서관의 이런 기능은 희소본이나 절판도서에 대한 접급성을 높여줄 듯하다.
https://youtu.be/Q946sfGLxm4

브룩클린 공립도서관이 자리한 곳은 프로스펙트공원과 이어진 그랜드아미프라자 입구에 위치해 있다. 그랜드아미 입구에는 남북전쟁의 북군의 군인들을 기리기 위한 '승리의 문'이 서 있는데 아쉽게도 공사중이라 상단에 위치한 조각상밖에 볼수가 없었다.

처음 이곳에 와서 하늘의 끝을 찾지 못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국의 하늘은 시선이 멈추는 곳 산등성이 하나가 걸려있고, 도심에는 빌딩의 끝이 맞물려 있다. 하지만 이곳은 눈에 걸리는 것 하나 없어 하늘도 질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더 넓은 잔디밭에는 산책나온 개들이 뛰어다니고 나무 아래 그늘에는 유모차를 세워두고 아이와 함께인 이들을 본다. 평화롭다. 이들의 평화가, 이들의 여유가 이들의 자연스러움을 우리가 부러워한 것인지도 모른다. 빠르게 발전한 문화나 높은 건물을 보고 놀라는 것보다 무경계의 사람들을 볼 때 눈이 마주칠 때 자연스레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이들의 호의가 가장 어색하고 놀라게 되는 것은 나만의 일인 것일까.오랜만에 눈에 넣은 자연의 초록보다 도서관 안에서 평안을 느끼는 것은 한낮의 태양에 흘린 땀을 식혀주는 대리석의 서늘함이 아닌 사람에게서 느끼지는 못하는 책이 가진 물성에서 오는 위로가 아닐까. 하릴 없이 도서관에 가서 진열된 장서들을 손끝으로 훓어보면 박제된 시간들이 꿈틀거리며 가슴으로 파고 든다. 박제된 나의 시간이야기도 책으로 남겨져 어느 도서관 서가 한 켠에 자리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다행이라 안도하게 된다. 많은 역사가 숯한 이야기들이 그렇게 쓰여지고 남겨진 것이겠지. 기억되길 원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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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하르트 톨레의 책을 읽고 있다. 책갈피에 적혀 있는 소개글이 좋다.

앎에서 모름으로
형상에서 존재로
껍질에서 깊이로
생각에서 무심으로
소리에서 고요로
과거와 미래에서 지금으로
그리하여 진정한 삶과 다시 만나기.
특히 "생각에서 무심으로"라는 부분이 마음에 와 닿는다. 무심(無心)이라는 것이 마음이 없음이 아니라 많은 생각들이 종국에 이르게 되는 마음의 평화라는 것. 지금 내가 격동하고 휘몰아치는 감정의 정점에 있다할지라도 그 많은 생각들은 무심으로 이끄는 자원이 된다는 것이기에 지금 요동함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쉽지 않은 시간을 지나고 있다. 많은 인생의 무너짐이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쓰러진 무릎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다. 시간이라는 체는 왜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은 체로 걸러내고 아름다운 것들만 남겨두는 것인지 알 길 없고, 기억이라는 어리석음은 고통의 순간까지도 미화시키는 것인지 더욱이 알 길 없다. 그럼에도 언젠가 무심을 이룰 수 있다면 아름다운 것만, 사랑만 남겨두고 싶다.

얼마만에 본 공중전화기인가? 셀폰이 대중화되고 공중전화기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맨해튼에 있는 뉴욕공립도서관에서 공중전화기 부스를 발견하고 기뻤다. 하지만 전화기는 놓여있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이 더 휑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 브룩클린 공립도서관 2층  3개의 부스중 한 곳 전화기가 있다. 물론 사용 가능한 것. 지나치게 기뻐하는 나 자신에 어리둥절했지만 그 까닭은 이미 알고도 남았다. 아마 시차가 없다면 버튼을 누르지 않았을까? 듣고픈 간절한 목소리가 들릴것만 같아 수화기를 들어 순간을 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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