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연초록빛 너머를 볼 수 있을까.

huuka 2023. 4. 22. 11:33

그냥 그렇게 스쳐 지나가지 않았다. 분명 자신의 시간에 자신의 족적을 뚜렷이 남긴다. 그것이 봄이다. 봄이 사라진다면 여름은 오지 않을 것이고 가을이 겨울 또한 오지 않겠지. 그래서 연초록빛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생명의 경이를 깨닫고 성장 소멸의 과정을 봄을 통해 바라본다. 잔인한 4월이, 아픔의 흔적만 가득했던 시간이 지난다. 그렇게 천년같은 한해가 지났다. 비가 잦다고 불만가득했던 입술이 옹색해지듯 하루가 다르게 물기를 머금은 잎사귀는 풍성해지고 닿지 않았던 마른 손들이 도로를 지나 어깨를 두른다. 분명 오지 않을 듯한 봄이 온 것이다. 지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어느새 한해가 지난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 때 그 자리에 서 있는데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변한다. 한기 든 마음을 누일 봄볕을 찾아야겠다.

집앞 공원 기러기 한 마리가 제 몸 다듬기에 여념이 없다. 투명한 눈. 이 세상의 투명한 것들은 설움을 동반한다. 깨지기 쉬운 나약함. 속살까지 드러내 보이는 깨끗함에 자기방어능력은 찾아볼 길 없다. 저런 여린 눈에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부리다. 뭉둥한 부리로 자기 날개죽지를 더듬고 고른다. 미학은 자학을 동반하고 자학은 저런 맑은 눈으로 슬픔을 분출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한 없이 가라앉는다. 거리를 좁혀가도 날아가지 않는 만용이 자신의 고통을 통해 나를 상처 입히고자하는 것일까.  때늦은 벚꽃과 서둘러 핀 라일락 향기에 머리가 어지럽다. 역동적인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내면에 현기증을 유발하는 춘병(春病)이다. 병들린 나는 아프고 이 봄이 지날 때까지 시름시름 앓을 것이기에 한 여름의 소낙비가 벌써 기다려지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살기 위해 이곳에 왔건만 몇날을 죽음을 생각했다. 성큼 다가온 죽음이 해마다 봄이면 나의 생명을 조금씩 갉아 먹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알면서도 아무런 처방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까지도....

한겨울을 지나 메마른 담쟁이에 내려 앉은 담쟁이는 봄의 잔혹을 숨긴 영광이다. 붕붕거리는 벌소리. 제법 엉덩이가 빵빵하니 살이 올랐다. 또 한계절이 오고 익어가는구나. 붕붕거리는 저 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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