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렸다.
2주간 재택근무로 방에만 있어야 하는 나와 달리 봄은 여전히 기지개를 펴고 달릴 준비를 한다. 지난주 보았던 도서관담벼락 벚나무에도 잔뜩 봄기운에 간지럼을 느낀 꽃망울들이 간질거리는 몸을 잔뜩 부풀린다. 다행이다. 어쩌면 이 봄비로 부푼 몸의 열기가 조금은 식혀지지 않을까? 짧게 지나가버릴 아쉬운 봄을 조금은 내 옆에 잡아두고 싶다.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은근히 끓여 오랫동안 온기를 전해줄 국물이 그립다.첫 술은 입술을 데일까 염려함으로 호호불어 조심조심 입으로 가져가야 하지만 어느새 뜨거워진 열기를 받은 숟가락질이 속도를 올리고 마지막 바닥을 긁을 때에는 아쉬움으로 숟가락 든 손이 힘을 잃게 되는 “탕”.
남편에게 바람을 넣는다. 재택근무를 권할 만큼 바깥출입을 삼가야 할 때이지만 “쫄복탕”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서른마흔다섯가지 이유를 늘어놓고 차에 시동을 건다. 근대화거리를 돌아 항구에 접한 쫄복탕집에 도착했다. 음식의 깊은 맛을 알 나이가 아니고서는 결코 들어서지 않을 낡고 허름한 가게다. 메뉴도 쫄복 하나다. 지리로 할지 탕으로 할지 그 선택만 하면 된다. “이것 하나만큼은 자신있다.”라는 단일품목과 주방장의 자부심을 읽을 수 있는 인테리어의 무심함은 오래 된 건물 곳곳에 숨어 있다. 이런 집에 앉게 되면 왠지 모르게 겸손해진다. 켜켜이 시간이 쌓아놓은 묵직함들이 가볍고 화려한 것에 치중하는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충고가 가슴에 느껴지는 까닭일 것이다.
바다의 쇠고기라 불리는 쫄복. 복어의 한 가지인 쫄복은 졸복아지, 복쟁이, 졸복, 쫄복으로 부른다. 몸은 25cm정도로 작다. 작다고 해서 복어 특유의 독성이 없을까? 아니다. 난소와 간장에는 강한 독이 있고, 근육과 정소에는 약한 독이 있다. 그런 까닭에 탕 한 그릇을 끓여내기 위해 세심한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끓여놓으면 지극히 소박한데 그 이면에는 독을 제거하는 화려한 칼놀림이 담기게 된다. 쫄복은 탕으로도 지리로도 맛이 뛰어나다. 순수한 담백함이 비리지 않고 함께 넣어 먹는 미나리나 콩나물로 인해 더욱 시원한 맛을 느끼게 된다. 오늘의 선택은 지리가 아닌 탕이다. 주인장은 거친 손으로 무심히 탕을 내려놓으며 부추무침을 넣어 먹으라 권한다. 탕은 지리에 비해 국물이 탁하다. 그 희멀건한 탁한 국물이 빨갛게 물든다. 빨갛고 탁한 국물이건만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입에서 나오는 첫마디는 “시원하다”이다. 두세 번 연거푸 입으로 가져간다. 뜨겁다. 시원하다. 뜨겁다. 맛있다. 이어지는 탄성이 잦아들 즈음에야 탕 속을 들여다본다. 25cm의 작은 고기를 삶아 국물을 받쳐내고 몸살을 바른다. 나머지는 엉성한 채로 받쳐 거친 뼈는 골라내고 다시금 끓여낸다. 여간 손이 가는 음식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탕 한 그릇에는 쫄복이 들려주는 바다의 이야기와 만든 이의 손길에 묻어난 인생의 이야기가 담겨 먹는 이의 마음을 잡는다. 따뜻하다. 탕의 온기가 아닌 그들의 이야기가 온 몸을 따뜻하게 한다. 두꺼운 뚝배기의 밑이 보인다. 아쉽지만 여행을 끝내야 한다. 어느새 내리던 비가 그쳐 있다.
마음이 보송해진다. 이런 날에는 “히라마쓰 요코”가 떠오른다. 그녀는 무심히 스쳐지나갈 일상에서 길어낸 소재로 생명력 입힌 글을 쓰는 작가다. 그녀는 식문화와 문학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맛과 사람을 잇는 일을 한다. 특히 그녀의 책에 소개된 한국의 식문화는 자국인이 보기에도 놀라운 만큼 애정이 깃들어 있다. 오늘 내 손에 들려진 책은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 / 바다출판사> 이다. 이 책은 그녀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를 한 눈에 보여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식기(食器), 한국, 중국, 일본등 아시아의 식문화(食文化) 사람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가 단락단락 나누어 소개된다. 더 없이 고마운 것은 이 책에 소개된 음식들의 레시피가 부록으로 소개되어 진다는 거다. 요코의 눈에 비춰지는 먹는다는 것, 밥을 짓는다는 것은 그냥 그대로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거룩한 ‘의식’이 된다. 마음을 드리고 편안함을 거부하고 수고로움을 사서한다.
“스스로 밥을 짓자. 스위치에 맡기지 않고 불을 조절해 맛을 만들어 가면서 따끈따끈하게 밥을 짓고 싶다. 그런 단호한 생각이 들었다.p95”
그녀는 전자레인지를 버리고 전기밥솥을 버리고 문화냄비와 돌솥으로 밥을 한다. 거듭되는 실패 속에 불을 다스리는 기술을 몸에 익히고 솥을 길들여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 서 있는 건강한 밥을 지어낸다. 어디 그뿐이랴. 맛을 위해 염전을 찾고 맛의 기본이 되는 맛국물을 만들어 낸다. 재료의 고유한 맛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그에 맞는 그릇을 찾는다.
각 나라마다 부엌문화가 다르고 음식이 다르다. 그녀는 그 나라 그 지역이 아니면 맛 볼 수 없는 향토음식을 먹는다. 그 음식을 통해 담을 허물고 경계를 넘어선다. 음식을 섭취하는 사람들의 정서와 몸을 이루는 일부분을 나누어 갖는다.
“두꺼운 한 조각을 덥석 먹는다. 깨문다. 오도독 오도독 식감 있는 살과 연골 속에서 천천히 피어오르는 무언가. 어두운 구멍을 계속 파 나가듯 계속해 오독오독 깨문다. 난생 처음인 무언가. 그것은 순식간에 입속을 화 하며 채우고 이어서 비강에 직격탄을 쏜 후 단번에 수천 개의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정수리를 찡 하고 찔렀다.p145”
무슨 음식을 먹고 표현한 것일까? 바로 홍어다. 한국인들에게도 호불호가 확실한 홍어. 나도 암모니아 향에 대한 거부감으로 일절 입에 되지 않는다. 그런 음식까지도 요코는 먹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음식을 통해 담을 허물고 경계를 넘어선다. 음식을 섭취하는 사람들의 정서와 몸을 이루는 일부분을 나누어 갖는다. 이런 그녀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에 빠질 때가 있다. 같은 여자로서 얼마나 다행인가? 일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요리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누구나 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럴 때 그녀는 애써 움직이거나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먹는 데 신경도 에너지도 쓰지 않으면서 컨디션을 회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냥 조심조심 그 시간이 지나도록 내버려 둔다.p212”
멀리 뛰기 위해 잔뜩 몸을 웅크린 개구리처럼 그냥 시간의 지남을 온 몸으로 느끼고 온 자연만물로부터 에너지를 조용히 빨아드리는 것. 그리고는 단 것을 먹는 즐거움으로 기력을 되살려나간다. 이 모든 지혜가 담겨 있는 아주 좋은 책.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이다. 이렇게 비가 오고 따뜻한 음식으로 부른 배를 방바닥에 붙이고 요코의 책을 읽는 것. 충분하다. 이 하루의 행복은.
보통 사람이 가진 보통의 강함. 거기에서 나오는 게 언제 어느 때 만들어도 결코 변하지 않는 맛일 것이다. 그 사람의 맛일 것이다.p16
세상이 완전히 어둠에 싸여 소리를 잃은 밤, 살짝 씻어 딸기를 통째로 작은 냄비에 넣고 설탕과 함께 끓인다. 그것뿐이다. 그러면 밤의 정적 속에 감미로운 향기가 섞이기 시작한다. 어둠과 침묵 속에서 천천히 누그러지는 과실을 독차지한 행복감으로 벅찬 기분이 든다. 냄비 속 딸기가 스르르 부드러워지면 마무리로 레몬을 몇 방울 톡. 불을 끄고 그대로 둔다. ... 지난 밤 냄비 속에서 펼쳐진 일이 비밀스런 꿈처럼 느껴져 아주 살짝 현기증이 난다. 그래서 한밤중에 잼을 졸인다.p 65
빠지직빠지직, 드륵드륵, 비직비직. 둔하고 무거운 소리가 어둠을 흔든다. 5분만 솥 옆에 서 있으면 숨이 막히고 온몸의 모공에서 땀이 나온다. 이상할 만큼 괴로운 열기 속에서 농밀하게 끓는 소리가 나고 소금이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진다. 빠지직빠지직, 비직비직, 이것은 세상의 소리일까. 어, 소리가 바뀌었다. 가볍다, 가볍다. 이제 동틀 무렵인 4시 35분 가만히 바라보자 갑작 가마솥 속 소리에 가벼움이 겹치며 소금 결정들이 동시에 힘껏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반짝, 결정이 퍼뜨린 단단한 빛이 눈을 쏜다. 아침 해가 올랐다. 장작불도 슬슬 잉걸불에 가까워 간다. 밤새워 열 시간 남짓, 아침놀과 함께 마침내 소금이 나타났다.p88
그런데 그날 그 순간 한잔의 차를 걱정 없이 맛있게 우리는 것, 그게 참 어렵다. 찻잔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목구멍을 우리며 마시면 최후의 한 방울이 달콤한 이슬 한 방울처럼 세상의 속박을 벗어던진 듯 근심을 잊게 해 주는 한잔이 있는가 하면 ‘ 이건 그냥 연한 색깔의 온수’ 낙담하게 하는 한잔도 있다. p156
마른 멸치에는 여러 맛이 있다. 감칠맛, 짠맛, 쓴맛, 알싸한 맛, 달달한 맛, 씹으면 씹을수록 조금씩 조금씩, 햇볕에 말려 더욱 농축된 바다의 생명이 춤추고 있는 듯 느껴진다. 그래서 아까운 마음에 머리와 내장도 떼어 내지 않는다. 한 마리 통째로 꼭꼭 씹어 먹는다. 열 마리 씹으면 깊은 충족감이 확 찾아온다.p215
항상 혼자인 것은 아닌데 집에서 혼자 밥 먹는 상황이 된다. ‘진가’가 드러나는 것을 그때다. 만약 혼자 산다면 투정 부릴 수 없는 극히 평범한 일상의 한 토막일 뿐. 하지만 일단 동거인이나 가족이 있으면 뭔가가 무너진다. 인간이 나약해져서 공복을 채우는 행동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는 한심함이 생겨난다.p223
옛날 같으면 ‘뭐야 장례식에서 먹고 마시다니’하며 싫어하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주 조금이라도 무너가를 먹는 것으로 몸이 찢어지는 듯한 쓸쓸함에 약간이나마 피가 도는 느낌이다. 혀 위에 올려 이로 씹고 침을 분비시키고 꿀꺽 삼켜 맛을 느낀다. 그러면 냉랭했던 슬픔에 점점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p227
그러니가 홀로 먹는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따스한 것이다. 외롭거나 쓸쓸한 게 아니다. 정말 그렇다면 혼자를 둘러싼 그 ‘관계’ 란 게 아주 조금 쓸쓸한 것일지도.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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