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때 묻은 나의 부엌 / 히라마스 요코 / 바다출판사
사랑하는 나의 문방구 / 구시다 마고이치 / 정은문고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좋은 책 두권이다.
작지만 소중한 이것들로 인해 내 삶이 더 풍성해지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고 소홀히 하게 되는 것들.
손이 기운것에 정이 든다.
비슷한 듯 닮아 있지만 전혀 다른 글.
흘려버리기 쉬운 일상에서 소재를 가져왓지만 <손때 묻은 나의 부엌>은 문장이 살아있고 글이 숨을 쉰다. 읽고 있으면 마음까지 위로받게 되는 따뜻한 온기가 있다. 반면에 <사랑하는 나의 문방구>는 정보성이 강하다. 문방구들의 역사, 정보를 이렇게 까지 일상과 버무려 쓸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내가 글을 쓴다면 이런 소재의 글들을 쓰고 싶다. 히라마쓰요코와 같은 글. 읽는 이를 포근히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한 글을 적고 싶다. 사물마다 깃든 정을 과하지 않게 표현하는 넉넉함을 갖고 싶다.
손 때 묻은 나의 부엌 / 히라마쓰 요코 / 바다출판사.
쌀통을 들인다는 것이야말로 내 살림의 토대를 완성하고야 말겠다는 절박한 바람과 각오의 반영이 아닐까? .... 양철이 좋았다. 붙임성이나 애교 따위 전혀 없다. .... 쌀통 안에 든 쌀알 한 톨 한 톨이 내 살림을 지탱해 주는구나 . 깨닫는 때가.p10-11
못 쓰는 잎을 떼어 내고 줄기에 가위질을 한다. 불필요한 모든 걸 떨쳐 버린 한 떨기 채소에는 들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제 몸을 맡긴 채 하늘거리던 때보다 생명의 근원이 더욱 농밀하게 응축되어 있을 것이다. p17
절구에 찧은 마늘은 끈덕지게 으깨져서 맛이 부드럽고 진하다. p38
녹은 긴 세월 쇠가 품어 기른 드라마다. 그곳에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있고 녹은 다름 아닌 그들의 이야기꾼이 된다. 무쇠 표면 위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시간을 아로새겨 온 확실한 강인함과 늠름함이 있기에 우리들은 그곳에서 흔들림 없는 미를 발견하고 감탄하는 것이리라. p42
일본인에게 젓가락은 신과의 교제를 위한 도구다 원래 젓가락은 온갖 신에 가까운 신성한 존재인 것이다 진귀한 산해진미를 소중히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 입으로 가져간다. 젓가락이 만물에 깃든 신과 사람을 매개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은 젓가락에 특별한 감정을 담는다. 젓가락을 쥔 채 망설이는 것, 식사 중에 젓가락을 빠는 것, 여럿이 먹는 음식을 개인 젓가락으로 덜어 내는 것은 금물이다. 게다가 사용한 젓가락을 남에게 쓰게 하는 것도 금기에 해당한다. 자신의 젓가락으로 손댄 음식은 타인에게 이미 부정(不淨)이다. 이것은 마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것처럼 일본인의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는 생리적 감각이다. 젓가락 받침은 말하자면 성스러운 도구를 더러움으로부터 지켜 내기 위한 물건이다. p149
흙과 불과 손기술. 내가 마음을 빼앗긴 아시아의 그릇은 모두 이 세 가지 요소가 결합돼 탄생한 하나의 아름다운 형상이다. 미묘한 일그러짐이 자아내는 태평함과 너글너글함. 자연유나 요변(窯變)에서 오는 재미. 투박하면서도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품격까지 느껴지니 지루하지 않다.... 오키나와에서는 수작업으로 만든 물건을 ‘데이누바나’(手ぬ花)라고 부른다. 사람 손에서 태어난 꽃이라니.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p154
참고 또 참아야 하는 우울하고 비참한 마음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 p183
이단 도시락을 포개고 흐릿한 하늘색 치리멘보자기를 꽉 졸라맸다. 자전거로 옮기면 달그락거릴 것 같아 꾸러미를 그러안고 서둘러 꽃집으로 향했다. 참 당연한 마음이었다.p220
요즘은 온라인 주문ㅇ 유행이라지만 직접 사 들고 오는 노고와 품을 들이지 않아서 그런지 먹을 때 드는 감사한 마음과 기대감까지 반감되는 느낌이다. p221.
문장을 쓴다는 행위는 곧 상념과 손끝이 격렬하게 맞버티며 언어라는 드라마를 탄생시키는 행위다 그래서 심야에 쓰는 편지가 그토록 온 신경을 하나로 모아주는 것이었다.p236
흰색이라고 했을 때 일본인이 떠올리는 건 타일처럼 반짝이는 하연색이 아닐 거예요. 따끈따끈 김이 나느 흰쌀밥의 색깔일수도 있고 깊은 고요함을 머금은 두부의 색일 수도 있죠. 아니면 먼 이국을 떠오르게 하는 백자 같은 색일 수도 있지 않을까. ... ... 흰색이지만 그늘을 머금은 명상적인 흰색이 태어났습니다.p245
사랑하는 나의 문방구 / 구시다 마고이치 / 정은문고
어딘가 연필은 허술하고 약식이란 관념이 있다. ... 연필을 쓰는 기쁨에는 연필을 깎는 즐거움도 당연히 포함되기 때문이다.p14
지우개는 잘못 쓴 부분을 지워주는 고마운 물건임에도 장난질과 괴롭힘을 당하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구나. 적당한 부드러움과 크기 저렴한 가격 때문에 더 괴롭히기 쉬운 걸까. ........ 노쇠한 지우개의 진짜 마지막을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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