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 –19 대유행병과 기독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19 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서점가에서 다시금 베스트셀러로 주목받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카뮈의 페스트다.
페스트로 인해 고립된 알제리의 오랑이란 도시가 무대가 된 이야기. 대구가 고립되고 청도의 병원이 코호트 되고 개인이 건물에 격리된다. 우리나라의 현실만이 아니라 전 시민의 외출금지령이 내려진 나라도 있고 이야기 속 격리된 오랑이 우리들의 눈앞에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페스트의 이야기를 해 보자.
이야기는 의사 리유가 목격한 쥐 한 마리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곧 이 도시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지는 페스트 때문에 주민들은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 전염을 막기 위하여 쌓인 시체를 태우고 가족들의 생이별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흡사 전쟁을 방불케 한다.
오랑은 외부와 절연되고 완전히 폐쇄된 도시가 된다.
도시는 폐쇄되었으나 그 안에서도 삶은 이어진다. 그 삶을 이어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무신론자인 카뮈를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자기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판단 아래 애인이 기다리고 있는 외부로 탈출하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찾아 헤매는 랑베르. 서로 연대하여 함께 맞서야 하는 상황을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이기주의적인 태도의 전형이다. 시민을 조직화하고 의사와 손을 잡고 페스크에 맞서는 지식인 타르. 지난 주일 코로나가 예배를 안드려서 번졌다고 말한 전북의 한 대형교회목사의 말이 연상되는 나늘루 신부. 그는 페스트를 신이 내린 재앙으로 올바른 사람과 사악한 사람을 선별하는 체라고 설교한다. 하지만 모두가 무구한 어린아이의 죽음 앞에서 분노와 패닉상태에 이르게 된다. 의사 리뉴의 외침은 책을 덮은 다음에도 오랫동안 남았었다.
“어린이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 놓은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 교회의 모든 예배가 멈추고 미발생지역에서도 “세상의 눈” 때문에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에 닥쳤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말씀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목회적 관점에서의 해석이 필요한 때다. 하지만 제한적 시각과 한계를 지닌 우리가 어떤 답을 내릴 수 있을까? 이럴 때 생명의 말씀사에서 발간한 COVID –19 대유행병과 기독교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쉽게 불안에 빠지고 부화뇌동할 수 있는 우리들에게 책의 내용을 떠나서 기독교적 고민과 그리스도의 자세에 대한 사유가 있다는 것 상당히 고무적이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5단락으로 나누어진 얇은 책이다.
Ⅰ.코로나19 – 왜 문제인가?
Ⅱ.왜 발생하는가? - 기독교의 시각
Ⅲ.주의해야할 것,
Ⅳ.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Ⅴ. 참고자료.
코로나의 관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모든 국민이 전문가수준만큼 정보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코로나 문제에 관한 내용은 접어두기로 하고 기독교의 시각과 우리의 자세에 관해 글쓴이의 주장을 살펴보자.
코로나사태에 대해 글쓴이는 1.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일 수 있다.(신 28:15,21) 2. 말세의 징조일 수 있다.(눅 21:11) 3.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을 나타내시기 위함일 수 있다.(요9:3) 4. 특정 판데믹이 발생하는 정확한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없다.(전 9:11) 5.타락한 세상에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문제일 수 있다고 말한다.(롬 8:28)
저자의 주장은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한마디 말, 주의가 하나의 견해로 들려지지 않고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마녀사냥의 먹잇감이 되는 오늘날 참 조심스럽지만 이러한 견해들 속에서 올바른 우리들의 자세가 뒤따른다면 혐오가 된 기독교가 다시금 세상을 살리는 참 종교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취할 자세는 무엇일까?
저자는 1519년 스위스에 발생한 흑사병당시 츠빙글리의 목회적 모범과 1527년 마르틴 루터의 편지와 초대교회의 모습을 통해 그 해답을 제시한다. 1. 겸손하게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인정한다. 2. 일반 은혜로 주신 지혜를 존중한다. 3.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나타낸다.(지원) 4. 기도한다. 특히 현장에서 분투하는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판데믹 상황을 통해 차별과 혐오로 배제를 일삼던 우리가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지역을 넘고 국가를 넘어 온 인류가 함께 대처해야만 하는 상황. 그 어떠한 차별도 혐오도 이 상황의 답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온 인류 앞에 행할 수 있는 환대는 무엇일까?
갈릴리 호수가 보이는 낮은 산위에서 우리 주님이 말씀하실 때 그 자리에 모인 무리는 결코 환영받는 이들이 아니었다. 소외된 사람들. 환자들, 죽음의 문턱에 이른 자들이다. 주님은 그들을 멀리하시거나 떠나가시지 않고 그 한 가운데 계셨다. 긍휼함으로 그들을 감싸며 그들에게 천국소망을 심어주시고 이 땅 가운데 빛과 소금으로서 살아가야할 소명을 심어주셨다.
많은 이들이 대구 경북을 향해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있고, 저 멀리 바다건너 조선인학교에도 도움을 전하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무엇보다 시급히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가 회복되어야 할 때이지만 안식일 날 선을 행하신 예수의 본을 쫓아 행함으로 드리는 예배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우리가 세상을 향해 베푸는 환대를 통해 하나님과 원수 된 누군가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낼 수 있는 생명의 때가 오늘이 되리라 소망을 가져본다.
단시간에 작업된 책이라 완성도가 높거나 반드시 이 시기에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권할 수는 없지만 우리 안에 이러한 긍정적인 고민과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생각하고 있을터. 함께 기도하고 함께 고민하면서 오늘이 교회의 위기가 아니라 새롭게 갱신될 기회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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