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

동화쓰는 할미.

huuka 2018. 1. 20. 21:30

2018.01.20

.

 "불사신이 아니야. 죽는건 죽어. 하지만 죽는 방식이 다른 사람하고는 달라. 나는 달처럼 죽을거니까. 하느님이 이 세상에 태어난 최초의 남녀에게 죽을 때 둘 중 하나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어. 하나는 나무처럼 죽어서 씨앗을 남기는 자신은 죽지만 뒤에 자손을 남기는 방법, 또 하나는 달처럼 죽었다가 몇번이나 다시 태어나는 방법. 그런 전설이 있어. "

 달이 차고 기울듯이, 그래. 달이 차고 기울듯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거야. 

                                                             ........사토쇼고 <달의 영유>

.

집안의 부도이후 이복 언니는 무당이 되었다. 그것도 '만신'이라는 제법 큰 신을 내림받았고 살풀이와 굿을 하는 제법 신통한 전문 무당이 되었다. 언니는 어려서부터 절을 좋아했고 대학에서는 불교동아리에 가입해 제법 열심히 절을 다녔다.  낳아준 엄마가 달라도 15년가까이 자매로 살았으니, 살가울 만도 하지만 기울어버린 집안탓도 있고, 그것보다 어려서부터 크리스천이었던 내가 신학을 하고 사역을 하면서 자연 소식이 끊겨 버렸다. 작년 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두어번, 그리고는 오늘 갑작스레 카톡이 왔다. 

 "병원 가봐라. 아파도 편하게 살 팔자는 아니네."

 "하나하나 준비하면서 살아라."

 "후회던 회한이든 다 의미가 없네. 그저 버리면서 살아라."

언니의 전언은 점쟁이의 점쾌처럼 나에게 닥칠 일을 예견하는 카톡이었다. 난 언니에게 얼마나 살겠냐고 농담처럼 물었다. 언니는 "얼마를 살건지는 누가 정해주나"라는 말로 피해갔다. 그러면서 구정이 되기전에 밥한끼하자고 한다. 전도사가 점쟁이 말을 믿겠느냐만은 오랜만의 연락으로는 참 머리가 주뼛서고 기분 좋은 말은 아니였다. 아프다고 다 죽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다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니니, 하나하나 준비하면서 살아야하는게, 40넘어 건강의 적신호를 겪는 모든이가, 불완전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이가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늘 죽음이 내 곁에 있었고, '죽는게 뭐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나이지만, 누군가에의해 자신의 "죽음"이 명시된다는 것. 아니 "당신의 생명은 기간한정"이라 말해온다면... 물론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기간한정의 삶은 살아가는 것이 당연함에도 다시금 지난 삶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

아침 기도문을 적으면서 언니의 말들을 곱씹었다. 딱히 삶에 애착이 생겼던 것은 아니지만 

 "자녀를 성장시킬 수 있는 동안의 삶을 허락하소서."

라고 적어 내려간 나를 발견했다. 한 번도 60넘은 나의 삶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다만 첫 출산을 하고 엄마없이 산후조리를 하면서 이 딸아이의 산후조리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 나의 기도제목이었다. 그래서 나는 보험도 65세만기(보통 80-90세만기인 요즘이다.) 로 들었다. 그 이후의 삶은 자식들에게 짐이 될 거라는 생각이 컸던 탓이다. 언니의 카톡을 받기전까지도 난 65세까지 살기. 그 만큼 살아갈 건강. 그 만큼 살아갈 경제력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오늘 다시금 난 65세가 아니라. 막둥이가 미성년에서 벗어나는 6년 뒤. 6년 살기를 목표로 잡았다. 처음 목표의 반절에 지나지 않지만 최소한 그 만큼은 살아야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지 않고, 막둥이에게도 최소한의 엄마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과 사람의 길이 인생의 계획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다. 그리고 그 섭리안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다. 앞으로도 순복하며 그분의 인도하심대로... 다만 기도의 제목이 되었다. 그 뿐이다  

.

하나하나 준비하는 삶. 그렇게 6년을 산다면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았다. 막둥이를 성실한 한 사람몫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성장시키는 것과 절제와 균형을 이룬 올바른 사회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일. 두 딸의 산후조리는 의무?라하기는 그렇지만 당연히 해야할 일이기에 이것들은 제외했다.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아직 무엇을 하고 싶다든지 이것만은 꼭 이라는 것은 없다. 좀더 생각해야겠다. 그럼에도 이것 한번 해 볼까 하는 것이 생겼다. 

.

두 편의 동화를 적었다. 동화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현듯.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할 손자손녀들을 위해 동화를 적어서 작은 책으로 엮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편의 동화는 큰 아이와의 이야기가 모티프된 까닭일까?  미래에 태어날 아가들에게 자신들의 엄마 아빠의 어린시절이 어떠했는지 들려줄 수 있는 동화. 아가들과 함께 하고팠던 무조건적인 할미의 사랑을 그렇게나마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있을 지, 또 포기해버릴지는 모르지만 건강이 주어지고, 삶이 주어지는 동안 이 일을 위해 마지막 노력을 해 볼까? .... 달이 차고 기울듯이  아이와 손자손녀에게 밤하늘의 달처럼 기억되고자 하는 욕심일런지도 모르지만.... 아낌없이 주고도 모자란 내 사랑. 내 아가들...




'지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0) 2018.02.17
천상의 두 나라  (0) 2018.02.15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0) 2018.01.14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0) 2018.01.02
일본적 마음  (0) 2017.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