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huuka 2018. 1. 2. 00:31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 최혜진 / 북 라이프 2018.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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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마음 따듯해지고 좋은 책이다. 최혜진이라는 작가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림책이나 애니매이션이 어린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닌 성인들에게도 충분한 울림을 준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최혜진 작가를 통해 처방받은 그림책은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아마도 최혜진이라는 작가가 처방을 내리기전 의뢰인들에게 들려주는 깊은 고민에서 얻은 이야기들이 치료의 효과를 높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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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외롭고 지치고 상처받고 혼란스러운 당신의 마음을 다독여줄 그림책을 처방해드립니다."라는 다정한 말 한 마디로 시작된다.프롤로그와 총 21가지의 처방으로 주어진 그림책이 소개되고, 4명의 그림책 작가 이야기(볼프 에를브루흐 / 마리오 라모스 / 올리버 제퍼스 / 사노요코)가 함께 실려있다. 처방된 동화는 국내동화와 번역 동화, 그리고 아직 번역되지 않은 동화까지 세계곳곳에서 뿁혀진 이야기가 실려 있다. 최혜진 작가는 처음부터 이 책을 쓸 의도는 없었다고 한다. 다만 자신이 그림책으로부터 받은 위로가 너무커서 혼자만 알고 있기에 아까워, 그림책에 기대고 싶은 고민이 있다면 보내달라는 공지를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메일을 받아 그 이메일에 대한 답으로 적은 것들을 엮어서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다고 출간의 과정을 말한다.(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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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릴 때 읽었던 그림책들을 돌아볼 때 그런 깊은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읽어나갔던 일들이 태반이다. 어쩌면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림책은 그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림책에서 받은 잔상은 가슴에 새겨져 어느 순간 떠오른 짧은 한구절의 말이. 그림책에 그려진 한 장면이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될 때가 있지 않은가? 성인이 되어서 "오즈의 마법사"의 뒷배경을 알게 되어 "아..이 이야기가 그런 것을 나타내고 있었어?"하는 뒷북도, 오즈의 마법사에서 느낀 감흥을 더해준 것은 아니였다. 그림책은 아이들이 그 작가의 숨은 의도나 은유를 다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며, 성인들에게는 그림책속에 감추어진 보물을 찾듯, 그 은유의 바다를 유영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 최혜진작가는 그림책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다양한 그림들이 선사하는 미학적 포만감, 이미지와 텍스트가 서로 보완하고 협력하면서 제3의 효과를 이글어내는 장르적 독특함, 창작해내고 싶은 심상을 벼리고 또 벼려서 어느 연령의 독자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그림책 작가들의 창의성, 종이가 아닌 다른 매체로 옮겨놓으면 그 빛이 사그라지고 마는 물질적 고유성..... 많은 부분이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복잡 미묘하고 때로는 이해 불가한 마음의 작용에 가만히 귀 기울여주고 공감해주는 그림책의 넉넉한 품이었다." p7-8


지금까지 그렇게 그림책에 매료되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충분히 작가가 느낀 그림책의 매력에 함께 빠져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담가의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아님에도 사람에 대한 이해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상처를 안고 있는 이들에게 얼마나 따뜻하고 지혜롭게 다가오는지...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작가가 그림책을 통해 누린 그 행복을 ,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누린 그 따뜻함을 함께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글은 특별히 줄 그은 부분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도 다 남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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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구멍을 채우고 주름을 펴고 살을 빼고 성공하고 잘하는 게 있을 때 당당해지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스스로를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태도에서 당당함이 시작된다는 사실을요."p29

"구멍은 내 뜻과 상관없이 찾아왔지만 구멍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p41

"무슨일이 벌어졌든 어쨋든 이것이 내 인생이라는 받아들임의 과정에서 필요한 것 그리고 때론 구원이 되는 것이 바로 내가 짊어진 냄비의 무게를 알아주는 타인의 공간입니다....... 마지막으로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쉽지 않은 냄비가 잇다는 것 그 냄비를 자신의 일부로 끌어안으려고 고군분투하면서 달그락달그락 걸어나가는 것이 인생의 본질이라는 점을 ..."p57

"처음 살아보는 삶이라는 바다 앞에서 불활실성이라는 어둠을 직시하면서 머물기.... 찬란한 긍정성의 세계 안에서 보지 않기로 하는 부정의 결단에 대해...."p141

"이름을 쓴다는 건 이게 나예요. 라고 선언하는 일입니다. 있는 그대로 한계가 있는 채로 자신을 인정하는 일이죠.지금 이 순간의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p174

"실망이라는 감정은 그리 나쁘기만 하지 않습니다. 나라는 사람의 진짜 알맹이를 알아가는 데 필요한 커다란 힌트가 그 안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실망감 앞에서 취해야 할 자세는 포기가 아니라 질문하기 입니다. 난 왜 이럴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난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라고 질문할 때 실망은 자기 이해의 계기가 될 수 잇습니다."p189

"감정의 덩어리째 받아들이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하지만 쪼개서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습니다. 마음의 결을 펼쳐서 자세히 보는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하면 내 감정을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고 나면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p203

"우정, 사랑같은 관계 맺기의 본질은 나와 다른 이질적은 타자를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관계가 깊어지고 가까워질수록 견뎌야 할 감정도 무거워집니다."p269

"삶이 아름다운 것은 유한하기 때문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유한한 존재를 사랑할 때 삶의 의미가 완성된다."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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