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you.

단풍은 멀어도 가을이야.2024.10.17.

huuka 2024. 10. 18. 02:23

오랜만에 오전시간을 이불속에서 보냈어. 자의든 타의든 바깥기온이 뚝 떨어진 오늘 이불속에서 보낼 수 있었다는 건 피곤한 일상중 뜻밖의 선물 같았다고 할까. 이불속에서 다시금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단숨에 읽었어. 2주전부터 정신없이 바쁜 스케줄속에 있었어. 70년만에 교회보일러 교체 공사가 있었고, 그 경비마련을 위한 바자회로 무척 분주했거든. 언제나 그렇지만 부교역자의 삶은 부산하기만 할뿐 영광도 손에 떨어지는 돈도 없어. 하지만 유난히 추울거라는 올 겨울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만은 넉넉한 수고의 댓가가 될 것 같아. 이미 2번이나 걸린 코로나 3번은 걸리겠나싶지만 무리한 몸에는 이상이 왔고, 끙끙거리다 어제는 응급병원을 찾아 독감과 코로나 검사를 했어. 빠르면 오늘이나 내일 결과가 나오겠지만 이미 많이 회복된 후 받는 결과는 아무 소용없을것 같아. 그럼에도 처방된 약을 먹고 오전 나절 느긋이 보내니 몸은 많이 회복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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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바쁘게 시간 보내는 사이 알고 지낸 분중 한분은 책을 출간했고, 그것이 얼마나 반응이 좋은지 영어로 변역되기까지 했다지. 기쁘기도 하지만 부러워지는 것도 사실이야. 글이란게 시간과 사색의 결과물인데 생계에 급급한 몸은 글과 자연 멀어지잖아. 지금의 시간이 언젠가 글감이 될지는 모르지만 글 한 자 써나갈수 없는 입장에서는 그런 소식이 참 부럽기만해. 지난 주 담임목사님을 통해 전해들은 한 강의 노벨 문학상소식은 그다지 놀라거나 의아하진 않았어. 높아진 한류문화와 k컨텐츠에 주목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들이 이맘때즈음이면 들려올거라 생각했지만 그 대상이 한 강이 될거라 생각지는 않았어. 그럼에도 타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권위있는 상을 자국민이 받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기쁨이야. 더욱이 "소년이 온다"가 아닌 내가 그녀의 작품 중 유일하게 좋아해서 이곳까지 들고온 "채식주의자"가 수상했다는 것이 적절했다고 할까. 번역의 문제라든가 역사관의 문제라든가 일단 다 덮어두고 왜 순수히 기뻐하고 축하해주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안타깝긴 하지만 이불속에서 다시읽은 채식주의자 그중 "몽고반점"은 여전히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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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왜 좋아? 라고 물어온다면 딱히 할 말은 없어.그냥 좋아. 그녀의 문체가 난해한 시적표현이라고 하지만 내게 그녀의 언어는 살아서 나의 세포를 깨우는 지극히 나일수밖에 없는 문체이고 꽃과 나무 생명으로 물화되는 발화가 나의 정서니까 그녀의 작품에 기생할수밖에 없겠지. 나역시 그 작품속의 영혜처럼 앙상한 뼈마디만 남겨두고 게워내고 싶은 몸의 수분한방울 남겨놓고 싶지 않은 동물적 이기가 있어. 식물인들 그런 이기가 없을까만은 선홍색 피를 뚝뚝 흘리는 동물적인 것이 아닌 그 피마저도 연초록이거나 굳걷이 땅으로 뻗어내린 흙빛을 담은 다갈색이기를 바라는 지도 몰라. 나는 지독히 연약하면서도 치열히 살아내고 있는 동물적 야성에서 벗어나고 싶은지도 몰라. 사람마다 자신이기를 거부하고, 혹은 자신을 갉아먹는 내안의 작은 짐승이 있다. 그녀는 꿈에 그것을 보았고, 육식을 포기하면 그것에서 자유로와 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꿈에서의 그 얼굴이 뱃속 얼굴. 내 안에서 올라온 얼굴p143표현하고 있어, 얼마나 멋진 생각이야. 나는 그녀의 시도 좋아하진 않지만 이 채식주의자 아니 몽고반점만은 정말 괜찮은 아니 노벨문학상을 받아도 될 만큼의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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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다시금 짐승처럼 살아가야할 터이지만  연약한 몸을 일으켜 책을 읽고 물구나무서서 머리카락을 바닥에 흐트려 나무가 되어갈 수 있는 이 하루가 내게는 참 소중하기만 해. 책은 늘 나와 함께 했지만 글세상으로 나를 이끈 너가 육신이 무너질때마다 그리워지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이 가을 너가 내게 전해준 카메라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좀더 단풍들고 울긋불긋해지면 사진이라도 몇장 찍어두려구.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한해의 가을이잖아. 차가워진 몸은 변함없이 다정한 나의 시로의 보드라운 털로 데우면 되겠지. 가을이 깊어가는 만큼 마음의 그늘도 짙어가네. 쉴 수 있는 오늘하루도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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