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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와서 유일한 기쁨이라면 어렵지 않게 그림을 대하거나 초판본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일거야. 지난 주 나는 더 모건 라이브러리 뮤지엄( The Morgan Library Museum)을 다녀왔어. 개학을 한 막둥이도 없이 보내는 혼자만의 추석 선물이라고나 할까?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은행 중 하나가 체이스 은행이야. 체이스 은행의 정식명칭은 JPMorgan Chase & Co.인데 이것은 창립자인 John Pierpont Morgan 이름을 쓰고 있어. 이 돈많은 양반은 대단한 수집가였는데 사후 대부분의 작품들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되고 눈치챘겠지만 내가 다녀온 더 모건 라이브러리 뮤지엄은 존 모건의 저택인데 개인 박물관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어. 어마어마한 서재와 그가 수집한 많은 책, 그리고 그림들은 왠만한 박물관보다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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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기 전부터 기대를 했던 것이 있어. 그건 쿠텐베르그 성경이 그곳에 있다는 것이었어. 약 180권을 인쇄했다고 알려진 구텐베르크 성경은 오늘날 50여권만 남아 있다고 전해지지. 그중 세권이 이곳에 있다니 실로 놀랍지 않아? 그것도 종이에 인쇄된 것 2권과 양피지에 인쇄된 것 한권으로 페이지가 유실되지 않은 완전한 사본이라고 해. 이것을 나의 눈으로 직접 마주하게 되었을 때 생각보다 큰 사이즈에 놀랬어.15세기의 성경이 어쩜 이렇게 보존이 잘 되어 있는지..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우던 것을 직접 보게될 줄이야. 이뿐이 아니었어. 방한가득 한쪽 벽면을 가득 차 있는 각종 성경본들은 엄청난 위엄을 지니고 있었어. 그외에도 보고 싶었던 것은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과 존 키츠의 앤디미온 초판본이었어.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들은 다른 전시관으로 출장을 가고 없었어. 11월에 프란츠 카프카 100주년 기념전시회때 다시 올 계획인데 그때는 볼 수 있을거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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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몰입해서 전작읽기를 하는 작가가 목로주점으로 유명한 에밀졸라야. 나는 이곳에서 에밀졸라를 찾을 수 있을거라 확신했는데 역시 대부호 은행장님은 서가 한 칸을 에밀졸라의 책으로 채워뒀더라고. 나는 그 서가 앞에서 마치 에밀졸라와 함께 사진을 찍듯 셀카 한 장을 찍었어. 3층으로 쌓인 서가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면 이곳이 라이브러리로 불리우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게되지. 이곳에는 시즌별 전시를 하고 있는데 그날은 러시아 발레의 역사에 관해 전시를 하고 있었어. 아마 11월에 있을 카프카전시전이 그 방에서 열릴것이라 예상이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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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30불이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을 보냈어. 선진국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문턱이 낮다는 것. 이런 것들이 상류층의 유희가 아닌 누구나 찾을 수 있고, 그것들을 봄으로 시야가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것. 나는 그림에 문외한이고 쿠텐베르그 성경을 보지 않아도 그만인 사람이지만 그것을 보지 않은 나와 본 나는 분명 다른 이미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 나는 이곳에 와서 때때로 절망하고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어. 하지만 이곳에서의 삶에 하나의 희망을 걸 수 있는 건 이런 것들을 접하는 경험이 나를 살찌우고 발전 시켜 나갈거라 믿어. 그래서 나는 이제 절망보다 조금은 희망을 내 인생에 걸어보려고 해. 나는 그 어떤 추억도 놓치고 싶지 않고 붙잡고 사는 것을 선택한 사람이 되기로 했어. 잊기보다 기억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거지. 그건 분명 아픔이 따르고 때로는 그리움에 깃든 외로움이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아팠던 순간만큼 소중했던 순간이 분명 있었으니까 나는 그걸 추억하려고 해. 그리고말이야. 언젠가 내가 그날들을 떠올리며 무엇인가를 그려낼 때 지금 내가 보고 경험한 것들은 좋은 원료가 되지 않을까? 나는 나이듦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방향으로 성숙해가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라 믿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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