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갑자기 서늘해져도 되는건가? 오늘 아침에는 두터운 점퍼를 꺼내 입어야할만큼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어. 아름다운 단풍이 계절이 오고 있나봐. 뉴욕의 가을은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정작 나는 그 멋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어. 올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름다운 뉴욕의 가을을 경험하고 싶어. 지난 주간은 아마 이곳에 와서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와 거의 맞먹을 정신적 피로에 시달렸어. 거기에다 담임목사님의 출타로 설교까지 해야했으니 긴장감이 수위를 넘었던 것 같아. 그래서일까? 오늘 아침에는 정말 일어나기 싫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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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의 설교는 3번째인데 설교단에 설 때마다 밀려드는 부끄러움은 뭐라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신학적 지식이 부족해서라거나 공부가 짧아서가 아닌 내 삶이 그분의 영광이 되지 못함에 나는 언제나 고개를 숙이게 되네. 그럼에도 배운 도둑질이 설교라 내 삶의 모양과 상관없이 교회의 녹을 먹고 살아가게 되니 이또한 송구한 것이 되어버리네. 과거를 묻지않는 이민교회분위기가 이런 나의 마음을 알 길 없겠지만 스스로 얼굴이 붉어지는 건 이 자리를 떠나게 될 때까지 계속되지 싶다. 하지만 나의 삶의 모습이 어떠하든 그분의 영광이 손상받지 않는 온전하고 완전한 영광이라는것이 조금의 위로가 된다고 할까? 하나님이 갖는 절대적 자존성과 감추어주시고 덮어주시는 은혜가 있기에 말씀의 자리에 설 수 있었겠지. 지난 주에는 초신자였는지 아니면 정체를 감춘 추숫꾼이었는지 알 수 없는 한 분으로 인해 교회가 온통 쑥대밭이 되었어. 한국에서 문제가 된 신천지를 이곳에서 또 만나게 될 줄이야. 외부인과 집에서 성경공부를 하기로 했다는 분에게 외부성경공부는 교회가 허락하지 않으며 그분의 말씀풀이와 딱 5번만 만나자는 조건이 이단의 우려가 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듣지 않는거야. 조금은 맹한 구석이 있어 보였지만 순진하고 선한 느낌이 참 좋았던 분이 땡고집을 부리고 귀를 닫아버리니 순식간에 교회가 모욕을 받게 되더라구. 목사든 전도사든 평신도에게라도 배울건 배워야한다는 것과 신학을 하지 않아도 성경을 가르칠수 있다는 논리로 성경을 풀어주신다는 분을 모시고 교회 열린공간에서 성경공부를 할 터이니 나보고도 나와서 들어보라는거야. 강경한 대응으로 그 일은 막았지만 결국 새로오신 그분은 등록 한달만에 교회를 떠나게 되었어. 참 씁쓸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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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모호해지는 세대를 살아가고 있어. 아니 모호해진다기보다 힘을 잃어가는 시대를 살아간다고 해야할까.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배교의 행위가 늘어나고 있음또한 부인할 수 없겠지. 나에게 묻더라고 이단이 뭐냐고. 나는 "끝이 다른거라고 말했어." 같은 하나님을 말하고 성경의 말씀으로 삼지만 그 끝은 다르다고.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완전함같이 성경의 말씀또한 그러하다고 나는 고백해.그런 까닭에 말씀외에 다른 그 무엇이 보태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 진리는 배타적인 까닭에 반대가 있고 공격받게 되어 있으니 우리가 그날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영적전쟁은 지속되겠지.
오늘 큰애의 소포가 도착했어. 엄마를 위해 챙겨보낸 살뜰한 손길이 느껴져서 고마움과 그리움이 밀려왔는데 함께 온 엽서에 적힌 마지막 한 구절이 하루종일 입안에 맴돌았어..
"나는 엄마에게 배운 다정과 활자가 참 좋아."
다정과 활자.입안에 궁그는 이 단어들에 나는 부끄럽고 비정상적인 나의 삶이 그렇게 잘못 살아오지 않았다는 위로가 되었어. 최선을 다한 아이들을 향한 사랑, 그 다정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유일한 것이 활자였는데 다정을 기억해주고 활자를 좋아해주니 나의 삶이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때로는 마음이 가닿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할 때가 있었고, 지나친 마음이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 때도 있었을 터인데 어느새 훅 자라 그 부담까지도 어깨에 짊어질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함께 책을 읽고 그 글귀를 나눌 수 있는 것 또한 좋고, 신간이 나오면 서로를 떠올릴수 있다는 것이 또다른 기쁨이 아닐 수 없어. 나는 큰애를 통해 나를 보고 나와 비교할 수 없는 멋진 한 여성으로 자라나는 모습을 볼 때 벅찬 감동과 자라게 하시는 전능자의 은혜를 기억하게 되네. 먼 이국땅에서 힘겹게 적응하며 대학을 준비하는 막둥이 모습을 볼 때 많이 불안해 하지만 큰 아이의 글을 읽으면서 크게 불안해 하지 않기로 했어. 나의 힘과 나의 능력으로 어쩔 수 없지만 막둥이 인생의 주인이신 그분께서 선하게 인도해주실 것을 믿어. 큰 아이의 삶을 인도하신 것 처럼. 막둥이 역시 엄마가 전해준 다정과 활자들이 좋아질 때가 올 거라는 기대또한 가져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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