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봄이 숨켜져 있는데 바람은 차다. 어제는 우박같은 싸리 눈이 내렸다. 사방에 적막이 내려앉았을 때 버스정류장 가림막 유리에 부딪히는 싸리눈은 앓는 소리를 냈다. 적요를 깨는 그 울음은 내뿜는 입김으로 내가 우는 것인지 싸리 눈이 우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내일을 바랄 때에 구색한 변명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돈에 궁한 삶이라 아이들에게 빚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아 빚 갚는 일이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 빚을 갚고 나니 날개죽지를 떠나지 못한 자식새끼가 있어 2년은 더 살아야한다는 변명도 굳이 옹색하진 않다. 그러다 나를 보니 까닭없이 설워져서, 나란 인생이 까닭없이 불쌍해서 그 2년을 지나 더 살고 싶어서 꿈을 꾼다. 지독히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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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꺾이면 몸이 앓는다. 추스를 수 없는 마음때문에 싸리 눈을 맞고 걸은 탓인지 버림받은 마음이 설운 탓인지 감기가 담뿍들어 일을 나가지 못했다. 추위때문에 좋아할 수 없는 겨울이 지나 봄은 오것만 그 봄은 내게 잔인한 기억밖에 남기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봄이 두렵다. 모든 생명이 역동하는 그시간 더욱 죽음을 향하는 내 마음을 다독일 여력이 있을까. 내 힘으로 이룰 수 있다 견뎌낼 수 있다 생각한 때에는 오히려 꿈을 꾸지 않았다. 죽음조차 내 의지로 결정할수있다 믿으니 말이다. 하지만 죽음조차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나니 죽을 수 없는 내일이 더 두려워 져서 꿈꾸기 시작한다. "모든 책임을 다하고나면 내 인생을 살거야."
죽기위해 바다를 찾았고, 살기 위해 바다를 바라본다. 갈매기 무리 속에 능청스레 앉아있는 청둥오리의 의연함이 마냥 우스운 까닭은 결연한 의지보다는 모로쇠로 일관된 과묵함이 현명하다 느껴져서겠지. 모른척 입다물고 견디다보면 시간이 지나가고 또 살아지겠지.그렇지 않겠어? 청둥오리!! 너의 초록머리가 노란 부리에 빨간 다리가 감출수 없이 드러나는 존재지만 누가 알겠어? 인생이란 그런거지 뭐. 하루 이틀 앓고나면 또 살아질거야. 쓸데 없이 마음 끓이지말고 청둥오리의 의연함을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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