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담양 메타세콰이어길이었던 것 같다. 마주잡은 손과 다감하게 바라보는 웃음 띤 얼굴. 무심코 펼친 책에서 팔랑이며 사진 한장이 떨어졌다. 잊혀지기를 거부한 얼굴이 거기에 있다. 그 사진 속 나는 지금 보다 젊었고,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했다. 눈물 짓는 날이 많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날을 웃었다. 사랑스런 날만 남기기로 작정한 나라서 나는 모든 것이 그립고 모든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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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Bowne Park을 찾았을 때 연못정화공사로 펜스가 쳐져 있었다. 펜스 너머에는 어릴 적 보았던 수양버들이 초록가지를 연못속 자기 모습을 향해 줄기를 길게 길게 뻗어 있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났다, 그리고 어느새 봄을 품은 겨울이 지나고 있을 때 펜스가 사라졌다. 초록수양버들은 잎을 다 떨구고 어느새 황금빛으로 바뀌어 있다. 한 여름 뙤약 볕아래 물을 품은 초록으로 남다른 모습을 뽐내더니 매서운 겨울 바람아래 다시금 황금빛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너란 나무는... 같지 않아서 다른 나무들과 달라서 더 소중하고 멋있어 보이는구나.
인식표를 한 한무리의 기러기떼가 연못에서 겨울을 난다. 막 연못에서 올라와 잔디속 먹이를 찾는데 자세히보니 이녀석들 털은 완전 방수복이구나. 날개깃에 송글송글 맺힌 물방울들이 오후의 햇살에 빛을 발한다. 보석을 박아넣은 듯한 녀석들의 동그란 눈이, 멋진 부츠를 신은 듯한 발이, 세련된 부리가 All Black으로 멋짐을 장착했다. 어디에서 날아와 이 계절이 지나면 또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하늘에 새겨진 그들만의 지도가 그리움의 장소로 그들을 안내하겠지. 돌아갈 곳이 있는 이들은 참 행복하다.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분명 항로를 알것만 나는 돌아갈 곳이 없다. 속절없이 시간은 흐르고 꿈은 산산히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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