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라는 것은 지각이라는 한 가지의 영역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체의 오감, 전 영역을 차지한 부분이라 잊으려는 노력이 참으로 무용한 것이 된다. 카페에서 무심히 흘려나오는 노래 소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음식앞에서도 떠올려지는 얼굴이 있다. 계절이 느껴지는 피부에서도, 우연히 일어나는 헤프닝에서도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 달라붙은 껌딱지처럼 기억은 붙어 있다.
인생을 돌아볼 때는 그렇게 굴직굴직한 사건들이 남아 있건만 일상에서는 하찮은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 마음을 흔든다. 교회집사님의 한국방문 소식은 낯선 감정을 불러 일으켰는데 이 낯설다 함은 오랜 일본생활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인 까닭이다. 나이를 먹어 그런 것일터이지만 아마도 이 마음은 애태우는 가슴이 그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겠지. 가고싶다는 마음보다 까닭없이 설워지는 것과 아려오는 명치의 통증이 눈물샘을 터뜨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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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까지 책 한권을 곱씹으며 읽었다. 내용에 감명을 받거나 문장력에 마음이 사로잡혀 그런 것이 아니라, 말이 하고 싶어서, 말이 듣고 싶어서 였는지도 모른다. 난 말의 사람이라기보다는 글의 사람인 까닭에 대화가 고픈 사람은 아니었다. 한 공간안에서 이루어지는 밀도깊은 친밀감이면 모든 육성을 대신할 수 있는 그런 부류의 사람인데도 말이다. 일상언어의 변화가 원인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공통의 관심사. 즉 그곳에서는 읽고 쓰는 일이 삶의 전반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언어는 기능적이다. 가슴이 사라진 언어는 사람은 더욱 외롭게 한다. 일방적으로 퍼부어지는 언어를 수납해야만 하는 일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나의 언어는 그들의 세상에 침투할 수 없는 삶에 배제된 사치품에 지나지 않는다. 오로지 육체적 일에 길들여진 사람에게 정신적 일은 팔자 좋은 소리에 불과한 것일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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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불현듯 전능자에게 물었다.
"아직도 나와 함께 계십니까?"
언제나 그랬듯 가슴에서부터 차오르는 눈물로 그분은 답해온다.
"너가 어떠하든 널 떠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니?"
혼자라 느끼는 것은 나일 뿐. 난 단 한 순간도 혼자인 적이 없다는 아이러니. 전능자는 모순속에 존재하는 분이신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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