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오픈마켓.

huuka 2022. 7. 20. 09:39

동네 아저씨의 오픈 마켓이 열였다. 궁금해서 눈여겨 살펴보아도 돈을 주고 살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뭐랄까 하나하나에 깃든 이야기들은 쉬이 값으로 흥정할 것이 아니다. 판매대 아래 눈부신 금발에 드레스를 입은 인형이 눈에 들어온다. 소유주의 시간은 얼굴에 주름을 만들어 놓았지만, 인형의 얼굴은 처음 그 가슴에 안겼을 때의 얼굴 그대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했을까? 때로는 함께 웃었을 것이고 때로는 함께 울었을 시간들. 누구에게도 말 못할 이야기를  속삭임으로 위로를 구했을 시간이 소용을 다했음에도 감히 떼어놓지 못했다. 오늘은 그 시간과의 이별을 고하는 것일까? 자신의 애착과 과감하게 작별을 고한다. 

족히 3-40년은 넘었음직한 자동차를 얼마나 쓰다듬고 보살폈으면 저런 광채가 나고 유연하게 달리는 것일까? 마니아들의 모임인가 생각했지만 중고판매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중고차 매매와는 달랐다. 그들의 인생과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프라이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감히 한 사람의 역사라 말할 수 있는 그들의 분신을 내어놓고 열심히 설명을 한다. 시운전을 해보게 한뒤 더욱 당당해지는 그들의 눈빛을 보노라면 하나의 물건에 갖는 애착이 저렇게 깊을 수 있구나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물건에 대한 애착이 그럴진데 하물며 사람에대한 깊은 정과 애착은 어디다 비할수 있을까?

한 낮의 태양빛에도 이렇게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는데 함께 벗한 인생의 흔적은 얼마나 짙은 그림자와 애착을 갖게 할까? 그럼에도 정오의 빛이 기울면 길게 늘어난 그림자도 점점 옅어져 어둠속에 잠기고, 과감히 애착을 끊어 작별해야만 할 때가 있다. 가장 아름다울 때, 당신의 이야기에 가장 많이 귀를 기울일 때 안녕을 고해야 할 지도 모른다. 자전과 공전이 만들어내는 계절과 낮과 밤이 반복될지라도 한 계절도, 단 하루도, 같은 계절 같은 하루가 없듯 '지금 여기에' 주어지는 삶은 애착으로 잃어버릴 수 없는 절대가치를 지닌 그 무엇이다. 소중히 한다는 것은 무엇에 묶이는 행위가 아닌 주어진 그것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오픈마켓에 다른 이가 매기는 값이 아닌 당당한 자신의 가격으로 내어 놓고 시대의 유행과 기술을 뛰어넘어 한껏 힘이 들어간 어깨로 판매할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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