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 림태주에세이 . / 웅진 지식하우스

huuka 2021. 10. 19. 22:45

마음 넉넉한 분으로부터 선물 받은 책이다. 내용이 너무 좋아서 줄을 긋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고 하셨다. 기대가 컸던 까닭이었는지, 아니면 지금 내게 닿지 않는 책이었는지 그분만큼의 감동은 느끼지 못했다. 분명 잘 써진 글이고 대단한 글임에는 틀림없지만 내 마음에는 와 닿지 않았다고 할까. 모든 에세이가 말랑말랑하니 감동을 주고 울컥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와 지식을 전해줄 수 도 있고 나누어지는 삶의 경험과 인생관을 통해 귀한 배움과 감탄이 터지기도 한다. 단지 지금의 내겐 어쩌면 더없이 따뜻한 마음 절절한 글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다시금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또다른 느낌이 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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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적힌 글이다. 쉽게 적을 수 없는 많은 시간과 노력과 연구를 통해 적혀진 글이다. 더불어 림태주라는 작가의 사람됨과 삶의 한 조각을 엿볼 수도 있다. 이때까지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왔고, 살아왔는지, 어떤 고민과 어디에 골몰했는지도 알게 된다. 사실 슬픔을 슬픔으로 쓰지 않는다할지라 그 사람의 슬픔을 충분히 느낄 수 있듯 말이다. 언어의 조탁이 탁월한 작가는 단어 선별력이 뛰어나다. 특히 세세한 설명을 하지 않는 짧은 단문으로 인상깊은 표현을 남긴다. 사실 이런 부분이 너무 탁월해서 완벽하다는 생각이 커서 가슴에 와 닿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글은 머리로 쓰는 것이지만 가슴으로 쓴 듯 느끼고 싶은 것은 나만의 바람일까? 작가의 글을 통해 내 가슴글을 적어나갈 밑밥이 될 것도 같아 이 책은 가장 가까운 서가에 두게 될 듯하다.
특히 제목들이 좋다. 말의 표정 / 언어의 화학 / 삶에 응답하는 중 / 나를 지키는 말들 / 고요의 원리 / 마음으로 보는 사람 / 혼잣말은 아프다 / 나무를 켜는 시간. / 햇볕을 모아두는 식물은 없다  / 말의 처음을 생각하다 / 슬픔을 슬픔으로 쓰기를 / 살의말들 .... 본문의 내용을 상상해볼 수 있을까? 상상그대로를 시인의 언어로 작가의 언어로 표현된 것도 있지만 우리들이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내용이 적인 것들도 많다. 아마 다른 분들은 분명 밑줄긋는 부분들이 많을 듯하다. 

< 담아둔 문장 > 
p86
가슴어는 점점 사어가 되어가고 있다. 가슴어가 사라져가는 이유는 서로 자신의 말만 하고 상대의 마음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가슴어란 말하기보다 듣기가 월씬 중요한 언어다. 가슴어는 일상어와 같은 어휘를 써도 의미가 완전히 다르고 반어법에도 능숙하다. .........가슴과 가슴이 가까운 듯깊지만 철별 같고 얼음덩어리 같을 때가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다. 가슴어를 가슴어로 듣지 않으려 할 때.
p92
묵언은 어떻게 말할까를 배우는 과목이다. 성내지 않고 들뜨지 않고 참답게 말하는 궁극의 언어다. ..... 말하지 않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어렵다 문을 걸어 잠그고 정진을 거듭해야 할 정도니까. 내가 고요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말할 때 잠잠함을 유지하는 법이다.
p210
사는 동안 사람은 한 권의 사전이 된다.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일생 동안 자신이 사용했던 어휘와 정의 내린 개념들이 빼곡히 세포에 기록된다. 기록한 페이지들을 한번도 펼쳐보지 않고 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고 그 단어들을 간추려 자신만의 문장으로 엮고 가는 사람도 있다. 인생이란 것이 있다면 그 엮인 문장들의 졸가리와 고갱이를 이르는 것이 아닐까.
<표현이 예뻤던 문장 > 
p153
여름 숲에 장대비가 쏟아지면 나무들이 젖은 몸을 털어대며 뒤척인다. 숲이 출렁일 때마다 숲의 빛깔이 시시각각 변한다. 파도가 뒤척일 때마다 그 진초록은 검은빛을 띠기도 하고 코발트블루가 되었다가 다시 초록으로 옅어지곤했다. 
독일시인 노발리스
"시인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마다 별자리에 특이한 움직임이 있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