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

옥봉 / 장정희 / 강

huuka 2020. 12. 23. 10:04

#소설_옥봉_장정희_강_2020우수출판콘텐츠선정작 

 

- 꽃은 졌으나 그 향기만은 붉디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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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흠(申欽)의 수필집 "야언"에 나온 한 소절을 급하게 읊조린다.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한 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이른 봄 매화는 작은 몸으로 태어나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아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 오히려 작은 몸으로 피어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신의 향기만은 감추지 않았다. 꽃은 쉽게 꺾여버리지만 향기는 꺾을 수가 없는 법. 매화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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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계절을 앞질러 피는 꽃이 있다. 그 꽃의 삶은 고달프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제사회에서 여성이 가진 재주는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된다. 마치 앞질러 피는 꽃이 추위에 떨어 그 생명조차 위협 받듯 말이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 시인으로 우리들에게 알려진 대표적 인물은 허난설현과 황진이 정도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에 옥봉으로 불리워지기 원했던 “이숙원”의 이름까지 함께 기억되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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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장정희의 눈에 띄어 짙은 향기로 우리에게 다가온 그녀. 장정희는 붉은 꽃잎을 열어 젖혀 읽는 이로 하여금 농한 향내에 취하게 한다. 장정희의 계획은 완벽했다. 그 향기에 취한 우리들을 시공을 초월해 어느덧 조선시대 무명으로 살아갈 수 없는 한 여인, 옥봉의 삶을 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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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의 서출로 태어나 시문에 뛰어남으로, 그녀의 삶은 예상되듯 순탄하지 않았다. 올곧은 정신과 기상은 시대의 조류를 따를 수 없게 했고, 그 꺾을 수 없는 재주로 자신의 분량의 삶을 살아가지 못했다. 그녀는 죽은 것일까?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생명을 떼어 시를 남긴다. 그녀는 알았다. 시로 인한 자신의 죽음을..

                   

‘시를 쓰리라! 내 삶을 조문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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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희 소설 옥봉은 숨겨진 한 문인을 드러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알려지지 않은 많은 시문들을 아름다운 언어로 소개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그 당시 여성들의 규방생활과 삶을 영글어내는 그 시대의 인물들의 심리까지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규방여인들의 시(詩)라 함은 사랑이 소재가 된 것이 많은데 옥봉의 시세계는 남편을 그리는 사랑시뿐아니라. 자신의 삶과 시절을 읽어내는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 소설의 재미는 옥봉이라는 여인뿐 아니라 빼어난 조연들의 말과 족적으로 더욱 깊어진다. 특히 옥봉을 연모한 두만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시대를 초월하여 감동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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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자료조사에 공을 들여 책에 사실과 가치를 더한 작가의 노고에 감사한다. 10여년의 시간을 묵혀 태중의 자녀를 출산하듯 탄생한 “옥봉”. “옥봉‘은 작가에게 있어 난산의 수고로 인해 더 마음이 가고 보람이 느껴지는 작품이 아닐까? 교사로 활동중인 작가가 글을 적어나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갔을까? 그녀역시 옥봉처럼 자신의 생명을 떼어 글을 적어나가지 않았을까? 소설의 이야기는 아무리 잘 간추린들 읽는 이만 못하다. 이 책은 충분히 돈을 드려 읽을 만하다. 소설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숨겨진 한 문인의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귀한 기회를 함께 가질 수 있기에 이야말로 일석이조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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洛陽才子何遲召(낙양재자하지소)

作賦湘潭弔屈原(작부상담조굴원)

手扮逆鱗危此道(수분역린위차도)

淮陽高臥亦君恩(회양고와역군은)

낙양의 재주 있는 사람을 어찌 진작 부르질 않아

상담부 지어 굴원을 조상케 하나요.

손으로 역린을 잡은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회양에 편히 누운 것 또한 임금의 은혜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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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白梅逾耿 (소백매유경)

深靑竹更姸 (심청죽갱연)

憑欄未忍下 (빙란미인하)

爲待月華圓 (위대월화원)

조그만 흰 매화꽃 더욱 빛나고

깊고 푸른 대는 더욱 곱구나

난간에 기대어 차마 내려오지 못하는 것은

환하고 둥근 달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