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 들에 마른 풀 같이 >
올해는 유독 장마가 빨리 들고 비의 양이 엄청나다. 간이건물로 지어진 사택에 내리는 빗소리는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마냥 타닥타닥 정겨운 것이 아니라, 마치 회오리 바람을 연상케하는 "휘모리"장단을 달린다. 유독 비를 좋아하는 나로선 장마가 오면 의식처럼 행하는 몇 가지 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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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이치카와 다쿠지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몇 차례고 돌려 보는 것, 어떤 매력이 그런 습관을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토리를 이끌고 가는 비와 화면 가득 메운 거꾸로 매달아 둔 ”테루테루보즈“의 모습에서 아이의 간절함을 읽는 까닭에서일까? 몇 번을 보아도 같은 장면에서 눈물이 나는 걸 보면 ”고장 난 수도꼭지“라는 별명이 그냥 붙은 건 아닌가보다. 또 하나는 묵은 김치처분이다. 사역을 하다보니 교회에서 먹고 넘칠 만큼 김장김치를 받는다. 돼지고기를 투박히 썰어 고기반 김치반 찌개를 끓여도 다 먹어내지를 못한다. 아삭아삭한 생김치가 젓가락의 사랑을 독차지 할 즈음 한 쪽은 양념을 대충 손으로 훓고 한쪽은 깨끗이 빨아서 부침가루에 조물조물 묻힌다. 계란하나 눅눅한 날씨를 고려해 갈분을 얼음물에 조금 섞으면 테두리를 좀 더 바싹하니 구울 수 있다. 그렇게 구운 일상의 소박함은 생김치로 도망간 젓가락도 돌아오게 만든다. 다만 주의할 것은 간혹 강판에 굵게 갈아 내린 감자전과 번갈아 구워야지 내리는 장맛비마냥 몇 일을 먹게 되면 다시금 젓가락은 외도를 하게 될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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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때아닌 호우로 피해를 입게 되어 안타까울 때도 있고 등교하는 아이들의 투덜거림도 있지만 길어야 3-4주. 이것역시 장마의 매력 아닐까? 내리는 비가 지겨워질 때 즘이면 “지겹다.”“지겹다”연발하던 입술이 “그래도 비가 오면 시원하긴 했어.”라고 입을 모을 뜨거운 햇살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뒤돌아보지 않고 사라지는 그 깔끔함까지 여간 멋진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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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비의 영향인지 아침부터 입술에서 찬송가 183장 “빈들에 마른 풀 같이”가 흘러나온다. 아마 내 기억으로 주일학교를 다닐 때 “다정하신 목자예수(567)”,”예수께로 가면(565)“.”예수께서 오실 때에(564)“와 더불어 가장 많이 불렀던 찬양중 하나가 바로 183장 ”빈들에 마른 풀같이“였다. 또래보다 조숙했던 탓인지 그렇게 이 찬양이 나는 좋았다. 의미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찬양을 나직나직 부르노라면 그 가사들은 살아서 입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눈을 통해 마음에 그려지는 3D입체다.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이 약속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한 소절만 불러보라. 내리는 빗줄기를 기다리는 풀잎들의 갈함이 내 목을 바삭바삭 마르게 하고, 나 역시 나의 갈증을 해결해줄 그 무엇인가를 향한 간절함이 생기지 않는가?. ”반가운 빗소리 들려 산천이 춤을 추네. 봄비로 내리는 성령 내게도 주옵소서.“ 봄비에 물오른 초록나뭇잎들의 합창소리가 귀에 들린다. 내 어깨마저 흥겨워져 입술은 배시시 벌어지고 생명을 덧입은 나무들 마냥 나도 싱그러움을 덧입는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철따라 우로를 내려 초목을 무성“케 하시는 은혜다. 돌보시고 입히시는 그 성실이 끊어지는 날이 없다. 비 내리는 오늘도 그 은혜가운데 있다. 이런 은혜가 많은 이들로 하여금 즐겨 찬양하게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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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183장 “빈들에 마른 풀 같이”는 에스겔 34:26-27절에 의거하여 만들어진 찬양이다.
“내가 그들에게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showers of blessing)를 내리리라. 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
미국의 부흥사 다니엘 휘틀(Danirl Webster Whittle,1840-1901)목사가 “복된 소낙비”라는 제목으로 1883년에 작사한 찬송시에 제임스 맥그라나한(James McGranahan,1840-1907)목사가 곡을 붙여 발표한 곡이다. 이 찬송이 우리 찬송가에 처음으로 채택된 것은 <신편 찬송가, 1935>366장에서이다. 성령강림을 간구하는 찬송으로 이만한 찬양이 또 있을까?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생명 주옵소서”
번역이 좋지 않아 원곡의 의미를 감하는 찬양도 더러 있는데 이곡만큼은 우리말 번역이 훨씬 은혜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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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다. 이 기간 얼마나 이 찬양을 부르게 될까. 갈한 내 심령이 주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생명 얻고 지친 삶에서 다시금 일어설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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