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다산초당을 가는 길에 한적한 시골에 앉은 고딕양식의 소담한 교회를 발견했다. 차창으로 바라보는데 교교한 분위기 사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한 기분이 든다. "자기야 저 교회 가보자." 차를 돌려 교회앞 마당으로 들어와 차를 한켠으로 세웠다. 아담하다. 예쁘다. 이 시골에 이렇게 멋진 교회가 있을줄이야.
주일 교인들과 모닥불을 피우고 고구마라도 구워드셨는지 모닥불 흔적이 있다. 주차장과 이어진 교회앞마당에는 지는 봄과 오는 여름을 알리는 꽃들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얼굴을 들고 서 있다. 정원에서 바라본 교회. 현관이 무척이나 특이하다.
현관문이 없다.
텅빈 현관에 옛날 풍금이 놓여있고 꽃병이 놓여있다. 풍금을 중앙에 놓고 양쪽으로 예배당을 향한 작은 출입문이 마주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미니어쳐"세상에 온듯. 세 사람도 겨우 앉을듯한 장의자가 여남은개 놓여 있다.도대체 이 교회의 정체가 뭘까? 이상하다. 뭔가 이상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기분이 묘하다. 순간 이단인가?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마주한 십자가가 뿜어내는 거룩함은 맨 뒷자리에 앉아 잠시 고개숙여 기도하게 만드는 위력이 있다. 일반 나무 십자가는 아닌듯하다. 주물일까? 가까이 가보니 윤기가 도는 나무다. 마치 벼락맞은 대추나무로 깎은듯한 십자가다. 예수님의 얼굴, 그의 고통이, 그의 모습이 나무의 결을 따라 뒤틀려 있다.
분명 시골이라해도 고딕양식의 현대적 건물의 교회에 들어왔건만 예배당 안은 마치 조선시대에 머문듯하다. 붓으로 적은 "주님 고맙습니다"가 왜이리도 생경할까?
나오면서 주보를 보니 기독교대한 복음교회라는 교단이다. 교회협(KNCC)가맹교단, 이단이 아니다. 뭘까? 집에와서 찾아보니 기독교대한 복음교회란 일제강점기인 1935년 당시의 기성교단이 한국 고유의 주체성을 갖지 못했다 판단한 최태용목사에 의해 창설된 새로운 교리의 교단이다. 창립당시의 기본교리는 "신학은 지극히 학문적이어라. 신앙은 복음이며, 생명적이어라. 교회는 한국인 자신의 교회이어라"였다. 교단의 초기 명칭은 "조선복음교회"였다가 후에 "대한복음교회"로 바뀌게 되엇지만 3가지 교리는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였구나. 광목천에 붓글로 쓰여 있던 그 글은 이들의 기본 교리였구나.
주보와 브러셔를 천천히 읽어본다. 상당히 진보적이다. 모든 종교를 넘나든다. 모든 종교를 인정한다. 남녘교회의 현판은 고 신영복선생님의 친필이다. 해남의 미황사 범종제작당시 교회는 성금을 전달하고 미황사 주지인 금강은 교회로 아기종을 만들어 보냈다는 기사도 읽을 수 있다. 성도수가 몇명이나 될까? 많아도 30명을 넘지 않을 듯하고 마을의 구조상 연령층도 높을 것 같다. 담임목사 사례비도 되지 않을 환경에서 소수교단의 색을 지키며 명맥을 유지해간다는 것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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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추구하는 기본교리."신학은 학문적,신앙은 복음적 생명"이라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신학이 학문에 빠지면 생명력을 잃은 지식에 치우치기 쉽다. 복음적 생명력에 빠지면 학문적연구가 결핍된다. 이것을 경계한 것일까? 이들의 기본교리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음이 보인다. 일제 강점기 주체성을 잃은 조선교회를 바라보며 "교회는 조선인자신의 교회이어라."라는 교리는 시대감을 상실한 듯 보이지만 그들이 추구한 것이 무엇인지는 미루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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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독특한 교단을 접했다. 이들의 신학을 인정할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구나. 그럼에도 교회가 주는 느낌. 따뜻함과 가족적인 분위기. 오랜 시간을 견뎌온 그들만의 역사가 아름답게 다가왔다.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나가야할 교회의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이 되어야할까? 작지만 강한 교회. 역사의식을 가진 교회, 세대가 공감하는 따뜻한 교회, 진리의 말씀이 왜곡되지않고 선포되는 교회. 우리가 꿈꾸는 교회,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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