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좀 더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었을까? 그때 내가 좀 더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 비참과 절망을 나눠질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나도 한계였다고 변명하는건 서로에게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때문이겠지. . 때로는 나는 껍질밖에 남지 않은 나를 본다. 나의 허상. 나의 허세. 나의 빈 껍질. 그래서 나는 나를 조문하고 때때로 나의 죽음을 맞이한다. . 언젠가 아카시아꽃을 따다 튀김을 해 먹은 적이 있었다. 입안 가득 튀김옷의 고소함보다 꽃의 향긋함이 남았던 기억. 삶과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 가운데 있고 기억은 덧입혀진 것보다 본연의 것만 남는것 같다. 아카시아의 향긋함만 남았듯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그래서 살아서 조문하는 나는 죽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