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졌을 때 / 누림북스 / 전문우

huuka 2017. 11. 21. 22:19

독서와 일상 2017.11.21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졌을 때  /  누림북스 /  전문우.


지금으로 충분해. 그렇게 오늘하루만 견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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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를 지나며 부도가 났다. 부도는 내 삶의 모든것을 무너뜨렸고 가정을 회오리바람속으로 몰아갔다. 꽤나 안정적인 삶을 누렸던 나로서는 빈한 삶의 무게가 어두운 그림자로 드리웠다. 부도 후 옮기게 된 교회 옆 연립주택은 낮에도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곳이었다. 이상하니 그 집에만 들어가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고 숨을 쉬는 것이 힘들어졌다. 아이들을 차에 태웠다. 그렇게 나는 집을 등진 여행 아닌 방랑객으로 6개월을 떠돌았다. 지나고서야 나는 알았다. 그것이 우울증이었다는 것을.... 그때 내게 가장 힘들었던 말이 "힘을 내" "이럴 때일수록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에 열중해"라는 말이었다. 힘을 낼 수도, 입술도 달싹거릴 의지도 없는데 무슨 기도일까. 철저히 고립된 혼자만의 세상. 그렇게 철저히 나는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게 되었다. 하지만 어린 자녀들을 키워야 한다는 모성본능은 먼저 행동을 바꾸게 했고, 일상을 등진 우울의 감옥에서 탈출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나는 일을 시작했다. 나는 그날이후 가슴에 우울의 그림자가 복병처럼 숨어있는 것을 알지 못한채 우울보균자로 살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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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아니 장례조차 참석을 못했다. 빈한 삶으로 미국행 비행기값조차 마련하지 못했으니까. .  거식증이 왔다. 커피와 초코릿외에는 그 어느 것도 목을 넘겨 삼키지 못했다. 체중이 38Kg까지 빠졌다. 일상을 살아가지만 나의 몸은 지독한 우울을 앓고 있었다. 20대에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지만 이런 처절한 외로움을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말 나는 철저히 고아가 된 것이다. 지는 노을도, 혼자 짖어대는 강아지의 울음도, 가슴을 후벼파는 듯 고통을 동반했다. 생계를 위해 일상을 살아가지만 몸과 영혼을 죽어가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죽음을 생각했다. 내 옆에는 그 누군가가 아닌 죽음이 친구처럼 늘 동행하고 있었다. 나의 차가워진 손을 잡아줄 단 한 사람의 손이 그리웟다. 나는 밤마다 잠든 딸애의 손을 찾았다. 그 고사리같은 손이 나를 구원했다. 두번째로 찾아온 우울증은 나에게 '손 애착증'이라는 새로운 병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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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누림북스에서 책이 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졌을 때>라는 책이다. 우울증,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두번의 짙은 우울증앓이를 한 나로서 우울증이라는 말은 생계를 위협하는 단어였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무슨 사역을 하나....라는 말을 듣게 될까봐.  우울증으로 사역에 실수가 생길까봐 외줄을 타는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보낸 시간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나의 손에 우울증의 책이 들려진 것이다. 그이 앞으로 온 책이었지만 나는 양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책을 펼쳤다. 빨라진 심박동이 어느사이엔가 고르게 고르게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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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표지부터 마음을 따듯하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비가 내리는 날 우산을 든 사람과 우산을 채 펼치지 못한 한 여자가 보인다.  우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녀는 우산을 펼치지 못한다. 그런 그녀를 알고 있는 것일까? 빗방울이 그녀의 머리위에는 그려져 있지 않다. 채 우산을 펼치지 못한 그녀. 내리는 비만은 그녀를 빗겨 내리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조금은 더 견뎌낼지도 모르겠다. 책장을 펼치면 친절한 편집자에 의해 의식하지 못한채 치료를 경험하게 된다. 바로 Color Therapy다. 노랑, 보라, 초록,빨강으로 이루어진 각 Chapter들은 우울한 마음을 따듯하게 감싸안고 새로운 열정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프롤로그와  4 Chapter 그리고 에필로그 , 인용글출처로 이루어진 이 글은 각장마다 마음을 두드리며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는 내민 손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웃을 가진 분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가야하는 지를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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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어느날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왔다 >에서는 우울에 대한 정의와 우울과 우울증의 차이를 설명한다.저자는 에리히 프롬의 말을 들어 우울을 설명하고 있다.

 "우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감각에 대한 무능력이며 우리의 육체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어있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그것은 슬픔을 경험하는 능력이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기쁨을 경험할 능력도 없는 것이다. 우울한 사람은 만일 그가 슬픔을 느낄 수만 있어도 크게 구원을 받을 것이다.p26"


또한 우울과 슬픔은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삶의 일부분이고 우울증은 슬프고 괴로운 감정 탓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는 심각한 극심한 고통의 우울상태(p40)이라고 구분하여 설명한다. 또한 "번아웃 증후군""화병""무기력증후군""트라우마""중독"등 우울증의 다양한 얼굴들(P52)도 설명한다. Chapter 1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한 가지가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내가 사역하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다음해에 부장이 될 순서에 놓여있는 집사님이 부장후보에서 빠지게 되었다. 그 이유가 아내가 냉담교인인 까닭이었다. 그 아내는 열심으로 교회를 다녔던 분이다. 하지만 우울증을 앓고 병원을 다닌다는 말을 듣자 교회에서는 '정신병자'라는 소문이 돌았고 그분을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이렇듯 사랑으로 감싸주고, 함께 기다려주고, 동행이 되어주어야할 공동체에서 우울증에 대한 잘못된 편견으로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주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우울증을 앓고 회복기에 있는 분들에게도 '수행하듯이 '삶을 살아가라고 (p69)권고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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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삶에 힘이 되어주는 작디작은 것들 >에서는 우울증을 앓을 수 밖에 없는 사회에서 우리가 자녀를 어떻게 바라보고 성장시켜 나가야 할지를 가르쳐준다. 또한 우울증은 지독한 외로움을 동반하기에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어떠한 우울속에도 나를 지지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역경과 어려움을 딛고 성장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경험과 사랑과 존중으로 유지되는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은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언제든 내 편이 되어주는 '단 한 사람의 존재'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다시일어설 수 있는 '회복'의 원동력 역할을 한다.p89

Chapter 2 에서 나를 주목시킨 것은 '감정조절'에 관한 잘못된 인식의 변혁이었다. 감정조절이란 참는 것인 능사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그 감정에 대한 적절한 인식과 판단을 통해 건강한 표현이 뒤따르는 것이 올바른 감정조절이라는 것이다.

 "권혜경은 그의 저서 "감정조절"에서 이렇게 정의한다.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칠 때 이 감정을 바로 없애려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이 감정이 무엇인지 연구하여 결국 감정이 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정을 가지는 상태 p101"

또한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성격유형과 멜랑콜리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우울증에 빠진 위인들의 이야기가 Chapter 2 에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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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3 인문으로 우을증을 읽다. >인문학 속에 나타난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로 우울증에 직면한 사회와 의료계를 폭로?하고 있으며. < Chapter 4 세상 속 우울증, 우울증 속 세상 >에서는 우울증의 병리적 진단과 의료계의 상황등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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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병철교수의 말을 빌어 신경증적 병리학적 상황이 지배하게 된 사회적 배경을 이렇게 말한다.

 "21세기 자본주의 시스템의 진화가 낳은 성과사회는 개인의 욕망을 부추겨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이것은 곧 자기 착취로 이어진다. 자기 착취는 주체가 스스로 자유롭다는 느낌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성과사회 즉 피로사회에서 개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것이다.p135"


사회구조가 사람들을 우울증환자로 이끌어가고 있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 더이상 우울증에 대한 색안경을 낀 편견은 무지의 소취다. 누구나 우울증을 앓을 수 있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을 앓을 수도 있다. '힘내라'는 무신경한 말대신 "괜찮아. 지금으로서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건 어떨까?. 그리고 "우울증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견디는 것이지 정신력이나 의지력으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p306)라고 가르쳐주듯 내면의 근육을 키워갈 수 있도록 함께 시간을 보내주자. 마음의 뼈가 부러진 그들에게 다그치지 말고 말없이 그냥 따듯한 손을 내밀어 오늘하루를 견뎌낼 지지자의 웃음을 보내주는 것. 그리고 차마 말 한마디 건낼 용기가 없다면 슬며시 이 책을 내밀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졌을 때" 이 책만으로도 치유의 효과는 충분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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