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저 내려 우울을 더하는 날이다.
일상의 무너짐. 우린 그 무너짐을 통해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방종. 우리의 죄됨은 소외와 상실을 통해서야 배우게되는 어리석음을 낳았다.
거룩한 기도의 자리의 부르심에 순종하기보다 의무가 되어버린 새벽기도의 문이 닫히고, 아이들과 부비던 예배시간도 빼앗기게 되었다. 사역자로서의 루틴이 무너져 내린 하루다.
사택과 교회의 구분이 없는 곳이다보니 딱히 출근을 제한받지는 않아 cctv가 없는 곳의 문은 닫고 사무실 앞 현관만 열어둔 채로 앉아있으려니 괜시리 눈물이 난다.
내일은 재의 수요일. 교회력을 그닥 챙기지 않는 개신교인탓에 사순절이 시작된들 별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불평 가득했던 40일 새벽기도가 그리워지는건 무슨 까닭일까?
.
2주간 주일학교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광고를 했다. 아직 우리가 있는 곳에는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사후약방문처럼 어리석은 일은 있을 수 없으니 미리 예방적 권고다. 남편과 둘이서 너무도 조용한 사무실에 앉아 사순절 묵상집을 만든다. 들려오는 소식에 마음 졸이며 불안해 할 선생님들과 청년들을 위해 이럴 때일수록 내면을 살피고 자신과 이웃을 위해 기도하도록 돕기 위함이다.
.
묵상집을 만들다고 이책 저책 뒤적이다 남편이 읽고 서가에 꼽아둔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켄 가이어의 “십자가를 바라보라”라는 책이다. 아드폰테스라는 출판사도 생소하지만 켄가이어라는 이름도 낯설다. 작가소개말을 보니 목회보다는 글쓰기에 기쁨을 느끼고 전업작가로 나선 분인데 제법 미국에서는 유명한 사람인가보다. 세밀한 관찰자의 눈으로 세상의 모든 창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작가로 소개되는 켄 가이어의 “십자가를 바라보라”.
이 책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게 묵상하고 그 고난을 통해 우리의 고통을 들여다 본 책이다.
.
피에타(Pieta)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경건, 자비, 슬픔을 의미한다. 르네상스 시대 기독교 미술에서 자주 표현되는 주제이며,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무릎 위에 안고 애도하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을 흔히 피에타로 일컫는다. ‘피에타’는 세월이 흐르면서 사전적 의미를 넘어 하나님의 주권에 영혼으로 복종한다는 뜻을 덧입었다.
.
주님이 말씀하시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분은 행동으로 말씀하신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이르시되....그대로 되니라.”라고 했다. 그분은 우주의 온갖 영광으로 말씀하신다. 그분은 사람의 언어로 가르치시되 특별히 성육신의 말씀으로 가르치신다. ... 하지만 주님은 이외에도 아름다운 것, 참된 것, 선한 것을 통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눈송이, 튤립, 모차르트의 협주곡 <피에타>를 통해 늘 우리에게 말을 붙이신다.
토머스 두베이 “진리와 아름다움”
.
지나가는 바람에도 아침 이슬이 맺힌 풀을 보고도 눈물을 흘리는 나.
고양이와도, 살랑이는 나뭇잎과도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4차원의 나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모든 만물에 깃든 당신의 영광을 세밀히 느낄 수 있는 감각을 허락하셨다고 믿는다.
그런 까닭에서일까?
피에타를 보고 주님의 고난에 대한 깊은 묵상을 담아낸 켄 가이어의 책은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읽어 내려갈 집중력을 갖게 했다. 인터넷을 통해 피에타를 여러 각도로 돌려가며 보고 피에타에 대한 글 몇 개를 찾아 읽어볼 만큼 새로운 감동이 주어졌다.
우리 주변에 있는 익숙한 그 모든 것들. 우리가 눈여겨 보지 않았지만 저마다의 사연과 저마다의 성실을 담아내는 많은 것들을 다시금 소중히 하게 만든다.
.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영광을 찾아가는 길은 이 세상을 향한 저항이다.
바쁘게 움직이면 알 수가 없다. 움직이면 깊이를 담아내기가 어렵다. 올인하지 않은 양다리는 풍성함을 누릴 수가 없다. 멈춰서야 한다. 생각을 통해 이미지를 담아내야 한다. 그 이미지를 가슴으로 가져와 느껴야 한다. 손을 움직이든 입술을 열든 표현해야 한다.
맘모니즘. 분주함에 대한 저항을 통해서 우리는 그분께로 나아갈 수 있다.
.
켄가이어는 처음부터 이 책을 저술할 목적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저술하고자 한 책의 글감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사진작가 로버트 훕카의 피에타 사진을 보고 강력한 메시지를 발견하고 이 책을 적게 되었으며 “피에타”는 자신의 삶을 바꾸어놓았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프롤로그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총 7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 장이 끝날때마다 “묵상과 대화를 위한 물음”을 삽입해 독자들로 하여금 더 깊은 묵상으로 이어지도록 배려하고 있다. 글 중간중간 발표되지 않은 미켈란젤로의 시(詩)도 싣고 있어 피에타뿐 아니라 그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조각가의 마음을 더 깊이 알 수 있게 해준다.
나 혼자만의 마음은 불모의 흙
내 자아로는 아무것도 낼 것이 없어라
모든 선함과 경건함의 씨앗은 당신이니
당신이 침묵하시면 움트지 않으리
당신이 참된 길을 우리에게 보이지 않으시면
아무도 그 길을 발견하지 못하리
아버지여! 우리를 이끄소서
월리엄 워즈워스가 영어로 옮긴 시 (p22)
.
켄 가이어는 “나는 대리석에서 천사를 보았어. 그래서 그가 풀려날 때까지 조각하고 또 조각했어”라는 미켈란젤로의 말을 통해 우리 안에서 “천사를 보시는”하나님을 상상해보라고 말한다. “모든 선함과 경건함”위해 “당신을 자유롭게 풀어놓으시려고” 하나님은 당신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지 물어온다.p35 사순절을 맞으며 읽으면 참 좋을 책이다.
.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인 우리에게 오셨다. 낙원을 찬란하게 비추던 아담이 지녔던 형상과는 다르다. 그 형상은 죄와 죽음의 세례로 들어와 인류의 모든 슬픔을 스스로 지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흔들림 없는 헌신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다.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사람에게 멸시받고 하나님에게 버림 받은 슬픔의 ‘사람’p48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돌이 석산으로부터 분리되는 것과 같다. 그 전에 몇 가지 작업이 필요하다. 구멍을 뚫고 쐐기를 박아 넣어야 한다. 하지만 최후의 금이 가는 순간 돌은 떨어져나간다. 돌은 채석장이 떠들썩해지도록 큰 소리를 내며 흩어지기도 하고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히 분산되기도 한다. 어떻든 어느 순간 자유롭게 풀려난다. 즉 석산으로부터 자유롭게 풀려나는 것이다. 하지만 자아로부터는 아직 자유롭지 않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다는 것은 돌을 자아로부터 자유롭게 풀어놓기 위해 하나님이 만지시는 과정이다. p59-60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상황을 연장으로 사용하신다. 투박하게 잘린 자아라는 돌 안에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갇혀 있다. 그 형상을 풀어 놓기 위해 그분은 예수가 아닌 모든 것을 깎아내신다. 조각의 본질이 돌을 버리는 것이듯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다는 것의 본질도 자아를 버리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자아를 버려야 최고의 자아, 가장 아름다운 자아, 가장 진실한 자아. 가장 영원한 자아, 즉 그분에게 가장 가까운 자아를 얻을 수 있다.p60-61
과정이라는 시기는 혼란스럽다.......대리석은 조금씩 작아지고 날마다 형체는 변한다. .... 돌가루가 쌓일수록 형상이 자란다. ...... 돌덩이는 점점 조각품으로 변모한다. .... 돌은 점점 더 아름답게 변화한다. p66-67
우리가 아버지의 손에 스스로를 맡긴다는 것은 다른 손들이 우리를 해치지 못하리라는 뜻이 아니다. .... 그것은 모든 손 이면에 그분의 손이 있다는 뜻이다. 홋날 그분의 손이 모든 손을 심판하실 것이다.p91
예수님이 십자가를 견디실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그분을 기다리고 있는 기쁨 때문이었다. (히 12:2) p174
'영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자가 처형 / 마르틴 헹엘 / 감은사 (0) | 2020.03.04 |
---|---|
예수가 선택한 길. / 플레밍 러틀리지 / 비아토르 (0) | 2020.03.03 |
좁은 문 좁은 길 - 폴 워셔 / 생명의 말씀사. (2) | 2020.02.10 |
낮은 자의 예수님을 만나는 중근동의 눈으로 읽는 성경 (0) | 2019.06.02 |
우치무라 간조 " 구안록" (0) | 2019.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