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 수련회를 마치고 책장 아래 칸에 놓여있던 책을 끄집어내었다.
폴 워셔의 “좁은 문 좁은 길”이다.이런 류?의 책은 거의 읽지 않지만 그날만큼은 책이 자석처럼 끌렸다.
책을 펼치니 남편은 묻는다. “ 무슨 책이야?”
“응 폴워셔,”
남편의 “풋”소리와 더불어 “그런 xxx같은....”
그러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호했다.
“그래서 지금 이 책이 필요해. 이런 시대. 이런 아이들. 이런 나라서 이런 책이 필요해.”
이런.
‘이런’ 으로 표현되는 이 시대. 아이들. 폴 워셔의 설교 과연 무엇일까?
20대를 일본에서 보냈다.
그때에도 교회를 다녔는데 일본인 친구들은 나를 이상하게 보았다.그들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이방종교였고, 그들이 믿는다는 신도 혹은 불교는 그들의 삶속에 녹아든 문화이며 삶이다. 그런 까닭에서일까? 종교에 대한 관심 혹은 종교율은 지극히 낮았다. 더불어 내세에 대한 생각은 없이 지금. 오늘. 지극히 현실주의자들이 대부분이다.
출생과 더불어 성장은 신도, 결혼식은 기독교, 장례는 불교 마치 유사시를 대비하는 보험상품처럼 그들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른 선택이 가능한 종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신학을 하고 사역의 연수가 쌓일수록 다음세대사역은 쉬워지고 방법이 용이해지는 손에 익는 그 무엇이 아닌 암울과 절망. 어떻게 할 수 없는 속수무책의 철옹성이 되어간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20대를 지낸 일본의 젊은이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주일예배를 드리면서도 기독교 신앙에 대한 관심이 없다.
자신이 믿는바에 대한 기대감도 알고자하는 열망도 없다.
그저 다닌다.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긴 여행은 마치 입술이 종착역인 듯 입술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질문하면 따박따박 유치부부터 들어온 설교를 바탕으로 정답은 해답지처럼 외는 아이들이 있는가하면 “모르겠는데요.”로 일관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무슨 조화인가? 수련회만 하면 은혜를 갑절로 받는다.
배움이 늘어 다루는 악기는 늘어나 세련된 연주로 감성을 자극한다.
온 몸을 불살라 찬양한 피곤으로 설교시간에는 잔다.
기도회시간에는 곡조에 맞추어 눈물 흘린다. 그렇게 은혜 받은 수련회는 그것으로 끝.
2박 3일간의 수련회로 인한 육체적 피곤보다 그들의 멍한 뻔한 반복된 배신에서 오는 영혼의 피곤이 더 크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떻게 하면 이런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들에게 복음의 자유함과 참 기쁨을 맛 보게 하며 믿음으로 살아가게 할 수 있을까?
폴워셔는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설교자다.
그의 설교는 대부분이 공격적이고 파격적인 강렬함이 있다. 오늘날 대부분 한국교회에서 기피하는 정곡을 찌르는 설교로 각성을 부른다. 그런 까닭에 그의 설교의 내용은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이단 시비도 있고 호불호가 분명히 갈린다. 뭐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랴. 나는 그의 책을 들었고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 사실 몇 페이지 되지 않으니 2시간이 못되어 다 읽었지만 – 곱씹듯 잘근잘근 씹어 읽었다.
“좁은 길 , 좁은 문”은 시작하는 기도로 시작해 마태복음 7장 13절에서 27절을 본문으로 한 총 9개의 설교가 실려 있고 마치는 기도로 책을 마무리한다.
01. 자기 자신을 점검하라.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은 회개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회개는 죄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p20”
“스스로를 점검하십시오. 말씀의 빛 아래에서 과연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스스로를 점검하여 정말로 당신이 그리스도인인지 살피십시오.p24”
02.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사람들은 십자가가 우리가 얼마나 귀한지 모여 주는 표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얼마나 부패했는지 보여주는 표시입니다.p33”
03. 좁은 길을 걸으라.
“저나 당신이나 수많은 이들이 부도덕하게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교회에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p39.”
“그러나 만약 당신이 좁은 문을 통과했다고 고백하면서 넓은 길로 행하고 있다면 ......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당신은 끔찍하게 매우 끔찍하게 두려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생의 대부분을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 라고 말하며 살아온 이들이 걱정됩니다. 만약 당신이 그래 왔다면 저는 당신이 걱정스럽습니다.p44”
04. 열매로 알리라.
“당신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당신의 삶이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당신이 정말 거듭났다는 최고의 증거 중 하나는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육신이 걷기 원하는 길을 걷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p51”
“지속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감정일 뿐입니다.p57”
05 열매 없는 신앙고백.
“당신이 가진 믿음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자 숙고하며 실제로 그 뜻을 행하는 삶은 대체 어디로 갔습니까?p66”
06. 예수님께서 당신을 아십니까?
“기독교는 단지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구원받았다고 말해 주는 것 이상입니다. 사탄도 예수님이 주님이신 줄 압니다. 당신의 삶은 변화하는 중입니까?p73”
07. 두 부류의 사람.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당신의 결혼을 세우고 있습니까? 당신의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키우고 있습니까? 당신의 경제생활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어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고 있습니까?p78”
08. 참된 경건.
“급진적(radical)그리스도인은 기독교적인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아닙니다. 급진적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입니다.p83”
“우리가 성경이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우리가 설교 가운데 듣는 것은 온통 비성경적인 예화들과 가벼운 일화들입니다.p85”
9.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날 교회를 정화하는 것은 오직 두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의 설교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일에 완전한 개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두렵고도 맹렬한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 이들만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깨끗케 할 것입니다.p90”
사이다.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사이다를 외칠 지도 모른다. 구절구절 맞는 말이고 필요한 말이다. 하지만 이 말들을 우리 일상에 우리 아이들에게 가져올 때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설교가 말씀이 힘을 잃었다. 영향력을 끼치기가 어렵다. 말씀이 세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아이들의 필요를 채우지 못한다. 어쩌면 좋을까?겉도는 것이 되지 않기 위해 아이들의 눈높이와 상황에 맞추면 세속화되기 쉽다. 그 절충선을 찾기가 어려운건 나만의 문제인 것일까?
그것보다 더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 사유하는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인터넷만 치면 모든 것이 다 쏟아지는 정보들 속에서 굳이 생각하고 사고하며 사유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유의 기능을 상실한 아이들에게 신앙함을 바라는 것은 무리를 요구하는 사악함인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 아이들에게 생각해라 사고해라 사유해라 말하면 뭐가 다른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슨 dog소리야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결론은. 좋은 책이다. 좋은 내용이다.
뻔하지만 정곡을 찌르고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다시금 사역의 현장에 옷깃을 여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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